난감한 교육부, '자사고 지정취소 요청' 동의? 부동의?

머니투데이 세종=문영재 기자 2019.06.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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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자사고 지정취소 요청땐 엄정 심의"

상산고등학교의 자립형사립고 재지정이 취소된 20일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 앞에서 학부모와 총동창회 회원 등이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상산고등학교의 자립형사립고 재지정이 취소된 20일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 앞에서 학부모와 총동창회 회원 등이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취소 동의여부를 놓고 교육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시도교육청의 지정취소 동의 요청이 들어오면 최종 취소여부의 키를 교육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사고 폐지와 일반고 전환은 현 정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교육자치를 강조해 왔던터라 교육부가 교육청 결정을 쉽게 거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지정 취소에 무게를 두고 '자사고의 일반고전환'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자사고 지정 취소 요청에 동의할 경우 자칫 소송전으로 치달으면서 학교 현장의 혼란과 학생들의 동요가 우려된다. 지역과 정치권의 비판 여론도 고스란히 교육부가 떠안아야 한다.

◇지정 취소 여부 키 쥔 교육부…"위법성·부당성·적합성 엄중 심의"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북교육청과 경기교육청이 올해 자사고 운영 성과(재지정) 평가 첫 대상인 전주 상산고, 안산 동산고에 대해 지정 취소 방침을 발표한 뒤 교육부는 전날 오후 마라톤 회의를 벌인데 이어 이날 오전에도 회의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자사고 지정 취소 요청이 들어온 건 아니지만 자사고 일반고 전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상산고에 대한 교육청 청문 절차를 마치는대로 다음 달 중순 요청서를 보낼 예정이다. 앞서 김 교육감은 지난 4월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임대차계약도 5년 뒤 재계약 하지 않을 수 있다"며 자사고를 건물임대와 비교해 재지정 취소를 언급하기도 했다.

자사고 지정 취소 권한은 법적으로 시도교육감에게 있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교육부다. 교육감이 자사고를 지정 취소하기 전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자사고 지정 취소 관련 절차(자료: 교육부) 자사고 지정 취소 관련 절차(자료: 교육부)

◇"평가 항목·지표 심의대상…형평성 논란 휩싸인 기준점수(80점)는 제외될 듯"

교육부는 일단 교육청에서 자사고 지정 취소 동의를 요청하면 신속하게 동의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고교 입시를 앞둔 중3 학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이 다음달 중순쯤 요청을 해오면 7월 안에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김성근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운영성과 평가 내용·절차의 위법성과 부당성, 평가적합성 등을 엄중히 심의해 부당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엄중 심의'라는 표현까지 쓴 것을 보면 단순 요식 행위에 그치지 않겠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 요청이 들어오면 교육부 장관 자문위원회 성격의 '지정·운영위원회' 심의가 이뤄지는데 사회통합전형(사회적배려대상자) 등 평가항목과 지표 등이 적절했는지 여부가 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형평성 논란에 휩싸인 기준 점수는 교육감 재량에 따른 것으로 심의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해 말 각 교육청에 이른바 '평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기준점수를 60점에서 70점(100점만점)으로 10점 높였다. 그러나 전북교육청은 유일하게 80점으로 기준점수를 더 높여놨다.

박삼옥 상산고 교장은 "교육청 평가가 형평성과 공정성, 적법성에 크게 어긋난다"며 "평가 결과를 전면 거부하고, 부당성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을 강력히 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장은 교육부의 '동의·부동의' 과정에서도 교육청의 독단적이고 부당한 평가의 문제점을 소명키로 했다.

◇소송전 비화 땐 결국 학생 피해 우려

교육부가 교육청의 지정 취소 요청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사고들은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 경우 교육부와 교육청 간 대립할 공산이 크다. 국정과제인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도 틀어질 수 있다.

반대로 지정 취소 요청에 동의하면 자사고와 학부모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는 이미 자사고 취소가 최종 확정될 경우 행정소송과 가처분신청 등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법원이 상산고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 상산고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지만 기각되면 일반고로 학생을 받게 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사고 지위를 둘러싼 소송전이 벌어질 경우 학생들의 학교 선택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정 취소 동의에 따른 지역과 정치권의 비판 여론도 예상된다. 전북 출신의 정세균 전 국회의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북교육청이 제시한 지표·기준에 특정 학교를 탈락시키기 위한 임의 요소가 반영된 건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며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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