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hole old world’라는 ‘뉴요커’의 평대로 실사 영화로 다시 만들어진 ‘알라딘’이 관객들에게 식상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실제로 ‘알라딘’은 로튼 토마토에서 56%, 메타크리틱에서 53점으로 결코 평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호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평론가가 원작과 비교해서 실사 영화의 장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제벨 더 뮤즈는 (지니 역의) “로빈 윌리엄스의 목소리가 줬던 특별한 에너지와 활기가 안타깝게도 윌 스미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2019년의 알라딘이 누군가에겐 기분 좋게 1992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릴 때의 추억을 망쳐버리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2019년의 ‘알라딘’이 1992년의 ‘알라딘’보다 하나 확실하게 잘한 것이 있다면, 폴리곤이 말하듯, 디즈니의 공주 캐릭터를 좀 더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디즈니의 공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좀 더 현대의 시선에 맞게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변해왔지만, 최근 실사화되는 영화 속에서도 원작 속의 캐릭터와는 좀 더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수준으로 변했다. 일정 부분은 현대의 시선으로 볼 때, 적합하지 않게 그려진 디즈니의 공주들에 대한 비판들 때문이다. 비평가들이 디즈니의 공주들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고, 디즈니의 공주들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 논문도 있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신데렐라’가 부자인 남자가 신데렐라를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이고, 자신은 자신의 딸이 스스로 자신을 구하길 원하기 때문에 딸이 ‘신데렐라’를 못 보게 할 것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덕분에 해피엔딩이란 결국에 사랑하는 남자와 로맨스를 이루는 것이었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2016년 ‘모아나’에서는 로맨스 하나 없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는 수준까지 발전한다.
자스민을 좀 더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그리면서 ‘알라딘’의 이야기는 원작보다 좀 더 풍부해졌다. 제목은 여전히 ‘알라딘’이지만, 이 이야기는 동시에 자스민의 이야기가 됐다. 자스민은 이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들에 힘겨워하다가 결국엔 그 압박들을 이겨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가 된다. 원작은 알라딘만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지만, 2019년의 ‘알라딘’에서는 알라딘과 자스민이 모두 성장한다.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의 벨은 원작보다 좀 더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고, 발명가이기도 하지만, 그 새로운 사실이 스토리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다.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벨의 꿈은 결국 왕자가 된 야수와 함께 평생 성에서 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자스민의 꿈은 플롯을 바꾸고, 결국 이야기를 좀 더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실사 영화에 새롭게 추가된 곡은 단 한 곡으로 자스민의 솔로곡 ‘Speechless’다. 자스민은 이 노래에서 그들이 입을 막고 쓰러뜨리려 할 때마다 난 침묵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1992년으로부터 27년이 지나서야 자스민은 좀 더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