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문 열렸다…이주열 "경제상황 따라 대응"

한국은행 창립 제69주년 기념사…"미중분쟁·반도체 경기 탓 성장 불확실성 커"…'비둘기 돌변' 美 파월 의장 발언 닮은 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니다'라던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태평로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한국은행 제69주년 창립기념식 기념사에서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그 전개 추이와 영향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세계교역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반도체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불확실성 요인의 전개 방향에 따라 국내 성장흐름이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대내외 여건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별 정책운용 전략을 수립해 적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가계부채, 자본유출입 등 금융안정 리스크 요인도 함께 고려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예상보다 악화되는 경우 금리인하도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물가에 대해서도 "목표보다 상당폭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금융안정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아직 늦출 수 없다"고 했지만, 지난해 기념사("각별히 유의해야 한다")에 비해서는 걱정을 던 모습이었다.

이 총재의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발언은 지난 4일(현지시각) 있었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발언과 닮았다.

파월 의장은 당시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이 개최한 통화정책 콘퍼런스에서 "무역분쟁이 미국 경제전망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고, 탄탄한 고용시장, 인플레이션 목표(2%)와 함께 미국 경기의 확장국면이 유지되도록 적절히 대응(Act as appropriate)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은 파월 의장이 그간의 '인내심'을 버리고 금리인하 가능성을 연 것으로 평가했다. 지난 11일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와치는 6월과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을 각각 17.5%, 67.2%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다.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제시된 금리인하 소수의견에, 금리인하에 부정적이던 이 총재도 변화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관심은 구체적인 금리인하 시기에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총재는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신성장동력 발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활성화,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제고, 규제합리화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통화정책 여건 변화 점검과 소통 및 전문성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며, 임직원 모두에게 비상한 각오로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