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버지는 40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나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6.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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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세계IN]
日농림성 차관 지낸 아버지, 40대 아들 살해
"가와사키 사건처럼 주변에 해 가할까 불안"
일본 중장년 히키코모리, 사회 문제 '재조명'

편집자주 인물(人)을 통해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더 깊이있게(IN) 들여다 보려 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해의 폭도 그만큼 넓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먼 나라의 상관 없는 일이 아닌, 이웃 나라의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찰에 호송중인 구마자와 히데아키씨/사진=NHK 방송 캡쳐경찰에 호송중인 구마자와 히데아키씨/사진=NHK 방송 캡쳐


일본 사회가 잇단 참극으로 충격에 빠졌다. 사건의 공통분모가 된 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사회가 해결해야 할 이슈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들에 대한 편견을 거둘 것을 당부하는 한편, 사회 차원의 해결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내가 장남을 찔렀다"…가족의 비극은 30년 전 시작됐다=토요일이던 지난 1일 오후 3시30분쯤, 일본 도쿄 네리마구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 경찰로 "아들을 찔렀다"는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이 현장에 달려갔을 때는 44세의 남성이 가슴과 등 등이 흉기에 찔린 채 이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일본 열도가 이 사건에 경악한 것은 친족간 살인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아들을 숨지게 한 이가 일본 정부에서 차관(사무차관)까지 지낸 전직 고위급 인사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참상을 빚은 이는 구마자와 히데아키씨(76). 일본 명문대인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7년 농림성(현 농림수산성)에 입사했다.



국제관계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면서 농림성 경제국장 등을 거쳐 2001년 차관까지 올랐다. 2002년 광우병 파동에 제대로 대응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약 1년 만에 물러나긴 했으나 농림성에서 나온 후, 2005년 주 체코 일본 대사로도 활동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그는 제 손으로 장남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가와사키 사건을 보고 내 아들도 주변에 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며 "주위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데아키씨가 지목한 사건은 지난달 28일 오전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한 50대 남성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흉기를 휘둘러 2명의 사망자와 16명의 부상자를 낸 사건. 범인도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확한 범행 동기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역시 오랜 시간 주변과 왕래 없이 지내온 히키코모리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히데아키씨도, 히키코모리 성향에 직업이 없고 무엇보다 10대 때부터 폭력을 휘둘러온 아들을 보고 며칠 전 발생한 흉기테러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이 인용한 경찰에 따르면 히데아키씨 장남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력을 가족에게 행사해 왔으며, 한동안 부모와도 떨어져 지내다 사건 발생 1주일가량 전 히데아키씨 자택에 들어왔다.

사건 당일에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진행하던 운동회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장남이 화를 내며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것이 부자간 언쟁을 벌였고, 결국 히데아키씨도 그의 장남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70대 아버지는 40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나
◇日 중장년 히키코모리 61.3만명 추산…"사회와 연결 회복시키는 게 중요"= 며칠 새 충격적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탓에 일본에서는 다시 오랜 사회 문제인 '히키코모리',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 히키코모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3월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본 내 40~64세 히키코모리는 약 61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히키코모리 사회문제를 10~30대 젊은 층 사회현상이라 치부해오던 일본이 중장년층에 대해 통계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일본이 조사한 15~39세 히키코모리는 54만명이었다.

중장년층 히키코모리 가운데 은둔 기간이 10년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36.1%에 달했다. 일본에서 19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태에서 이들의 은둔 기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됐다.

일본의 또 다른 사회 문제인 '8050(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현상)'문제도 결국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중장년 히키코모리 숫자가 이미 청년·청소년층의 그것을 넘어선 데다 '8050'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문제점이 터져나오자 사회 역할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더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히데아키씨 사례를 두고 "'어떻게든 부모가 해야 한다'는 자기책임 분위기가 사회에 퍼지면 히키코모리 가족들은 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며 "특히 이번 사례처럼 중학교 무렵부터 문제점이 있었다면 조기에 전문기관과 연결해 가족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히키코모리를 '범죄 예비군'으로 보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사건은 히키코모리 상태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며 "사회에 속할 장소도 없고 이해자도 없이 쫓겨나 고립된 결과 야기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변에서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볼수록 해당 가족들은 세상의 눈을 두려워해 고립을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당국도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다. 도쿄도는 그동안 34세 이하로 제한했던 히키코모리 상담 연령제를 철폐하고 담당 부서도 청소년부서에서 복지부서로 옮겼다.

일본 정부는 35~44세, 이른바 취직 빙하기 세대를 고용하기 위해 내년부터 예산안을 편성키로 했다. 향후 3년간 이들 세대에서 정규직을 30만명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네무토 다쿠미 일본 후생노동상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안이하게 사건의 원인을 히키코모리와 연결지으면 안 된다"며 "히키코모리에 대한 대책은 개인의 상황에 기대 세심하게 지원하되 사회와의 연결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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