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화웨이 포비아 2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9.06.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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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머니투데이 사진DB출처=머니투데이 사진DB


 미국 정부의 화웨이 고사 작전이 점입가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를 자국 기업들과 거래를 금지하는 거래제한 대상 기업 리스트에 올렸다. 이후 구글과 인텔 등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와의 기술협력·부품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정부는 주요 우방국들에도 화웨이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공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했다.

 트럼프정부가 이렇게까지 국제사회에서 화웨이를 고립시키려는 진짜 이유는 뭘까. 미국은 중국 정부를 대신한 스파이로 화웨이를 단정짓지만 이보다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 및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의 패권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5G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미래 경제사회의 대동맥산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1순위 공약인 ‘일자리 창출’은 물론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핵심 인프라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반드시 5G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다른 나라가 미국을 앞지르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런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화웨이는 눈엣가시다. 화웨이는 5G 장비분야에서 가장 앞서는 민간기업이다. 특허출원 건수도 세계 톱 수준이다. 스마트폰 시장(출하량 기준)에선 미국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던 애플을 제친 지 오래다. 이러다간 5G 이후 경제패권 자체를 중국 기업에 넘겨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 만하다.



 그렇다고 이번 화웨이 사태를 미국과 중국의 이해충돌로만 보기에는 찜찜하다. 디지털기술 플랫폼이 경우에 따라 통상무기로 악용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빠르면 하반기부터 퀄컴, 인텔 등 미국 기업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지 못한다. 민간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나 장기 공급계약 등 상업계약서는 ‘국익’이라는 명분에 모두 뒷전으로 밀렸다. 더욱 아쉬운 건 구글과의 제휴다. 화웨이는 하반기부터 구글로부터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 경우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지메일, 구글 지도 등도 온전히 쓸 수 없게 된다. 안드로이드는 전 세계 휴대폰 제조사에 무료로 배포됐다. 구글이 전 세계 스마트폰 OS 시장의 75% 이상을 석권할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개방정책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핵심 우군이던 화웨이 입장에선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에 나섰다. 화웨이의 노트북사업 비중이 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 아니라 특정 국가를 거래 중단 대상으로 지정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당장 ‘윈도’ 기술 지원이 끊기면 한 나라의 컴퓨터들이 해킹 위협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안전지대일까.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 경쟁력은 뛰어나지만 PC·모바일 OS를 포함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대부분 해외제품이다. GPS(위성항법시스템) 기반 내비게이션 등 위치정보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내비게이션, 지도 등 위치정보 서비스는 상당히 발달했지만 위성과 GPS는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한다. 아무리 우방국이라지만 어떤 형태로든 통상마찰이 없을 순 없진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기술 플랫폼의 통상무기화가 일상화한다면 아찔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압박하는 미국과 “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중국 사이에서 ‘제2의 사드’ 사태를 우려하는 지금의 현실보다 안타까운 건 어쩌면 앞으로 닥칠 기술플랫폼 패권에서 이렇다 할 대안이 없는 우리 IT(정보기술)산업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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