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일의 건설이야기] 대만에서 찾는 '한국 풍력발전' 해법

머니투데이 문성일 선임기자 2019.05.3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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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일의 건설이야기] 대만에서 찾는 '한국 풍력발전' 해법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16년 1월 대선에서 ‘원전(원자력발전소) 없는 나라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후 집권 2년차인 이듬해 1월 전기사업법에 ‘2025년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완전 중단한다’는 조항을 신설, 본격적인 탈원전에 나섰다.

‘원전을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계획에 따라 차이잉원 정부는 기존 △석탄 45.4% △액화천연가스(LNG) 32.4% △원전 12.0% △신재생에너지 4.8%인 전력생산 구조를, △LNG 50% △석탄 30% △신재생에너지 20%로 바꾼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해상풍력발전 건설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무엇보다 섬나라인 대만의 경우 풍력 자원이 세계적으로 가장 풍부하기 때문이다. 1차적으로 차이잉원 정부는 2025년까지 약 230억 달러(27조 원)를 투자, 5.5기가와트(GW)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짓기로 했다.

이 같은 정책 방향에 따라 대만 현지에선 해상(offshore)을 중심으로 한 풍력발전이 미래 핵심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차이잉원 정부는 자체 기술력으론 당장 시공과 장비 부분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간과했다. 결국 자국의 풍력산업 기반없이 추진된 대만 해상풍력발전사업 입찰은 해외기업들의 경연장이 됐다.



실제 지난해 1월 대만전력이 발주한 장화현 앞바다 해상풍력발전사업은 벨기에 해양토목건축업체 얀데눌(Jan de Nul)과 일본의 히타치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따냈다. 이 사업은 5.2메가와트(㎿) 규모의 풍력발전시스템 21기(총 109.2㎿)를 짓는 프로젝트로, 총 8억 달러(9405억 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8㎿ 풍력발전시스템 80기(총 640㎿)를 짓는 윈린 해상풍력발전단지 프로젝트는 독일의 대표적 풍력개발업체인 WPD AG가 수주했다. 이 사업의 풍력발전시스템 패키지와 기반시설공사는 각각 독일의 지멘스가메사와 네덜란드의 반오드에게 돌아갔다.

주요 공정의 자국 업체 참여없이 외국계 풍력사들만 즐비한 상황에서 대만 정부는 해상풍력발전 전력가격을 당초 예고(5.110대만 달러)보다도 7.5%(0.405대만 달러) 인상한 킬로와트(kW)당 5.516대만 달러로 확정했다.


‘탈원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도 2017년 12월 내놓은 ‘재생에너지 3020’을 통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과 관련해선 2030년까지 총 16.5GW를 보급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지금까지 누적된 풍력발전의 12배가 넘는 양으로, 내년부터 본격 발주가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11년 간 연평균 1.5GW씩을 보급해야 한다.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설치된 풍력발전 규모는 육상(onshore) 94개소(607기) 1226.59㎿와 해상 5개소(28기) 72.5㎿ 등 총 98개소(육상·해상 복합단지인 영광풍력은 1개소로 통합)에 1299.09㎿(약 1.3GW)다. 따라서 이 같은 정부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려면 현재의 총 누적 풍력발전량보다도 매년 15% 이상 더 많은 시설을 지어야 한다.

통상 풍력발전 건립비용은 육상을 기준으로 할 때 1㎿당 25억 원 정도다. 해상풍력발전은 육상보다 비용이 2배 많은 50억원 가량 소요된다. 입지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해상풍력의 경우 시공비용이 기자재 비용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이를 감안할 때 내년 이후 2030년까지 연평균 국내 풍력발전시장 규모는 3조7500억~7조5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원전 1기 건립비용이 4조~5조 원이란 점에서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문제는 이처럼 큰 장이 열리지만 과연 국내 관련 기업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다. 자칫 대만의 사례처럼 외국기업들만 득세하는 ‘남의 잔치’가 될 수도 있어서다.

대만 정부는 원전 대신 선택한 신재생에너지의 기술개발과 양산화를 위해 타이난시에 산업단지를 조성키로 했다. 하지만 이 산업단지의 정식 운영은 2020년부터로 예정돼 있다. 이 때문에 이 기간까지 집행되는 투자비용 대부분이 외국기업들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구나 지난해 발주된 대만 해상풍력단지 프로젝트의 경우 외국업체들이 30~40% 가량 폭리를 취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상 국부 유출과 함께 자국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한 셈이다.

한국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국내에 설치된 풍력발전기의 경우 국산과 외산 비율이 48 대 52 수준이다. 최근들어 국내기업들이 기술개발 등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력은 다소 뒤지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국내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제도 보완이나 지원책없이 대량 발주가 이뤄질 경우 외산 점유율만 더욱 늘려줄 수밖에 없다.

덴마크의 베스타스나 독일의 지멘스 등과 같은 세계적인 풍력발전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지멘스의 경우 대만을 전초기지로 삼아 한국시장을 노릴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외국기업들의 시장 잠식률이 높아질수록 단가 상향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기술개발 등을 통해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이 필요한 한국기업들은 기회와 경쟁력을 동시에 잃을 수 있다.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고 제대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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