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출구가 안 보인다…악순환에 빠진 '한일 관계'

머니투데이 오상헌 , 최태범 기자 2019.05.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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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최악의 한일관계] (종합) 강제징용 판결이후 7개월째 악화일로 왜?

【뉴욕=뉴시스】박진희 기자 = 제73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오전 파커 뉴욕 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8.09.25.   pak7130@newsis.com   【뉴욕=뉴시스】박진희 기자 = 제73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오전 파커 뉴욕 호텔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8.09.25. [email protected]


풀릴 듯, 더 꼬이는 '한일 관계'①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4.11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 개선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껄끄러운 한·일 관계가 한·미·일 안보협력과 삼각동맹은 물론 미국의 '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FOIP)' 전략에 미칠 악영향을 트럼프 대통령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3월 말 강연에서 "한·미·일 3국이 북한 등 전략적 핵심 사안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관계가 좋을 때 세 나라 모두가 혜택을 얻는다"고 했다는 발언도 소개했다.



외교가에선 최근 한·일 양국이 서로를 향해 발신했던 유화 메시지가 미국의 중재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을 국빈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북한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제는 양국 정부는 물론 트럼프 행정부도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꼬인 매듭을 풀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7개월째 이어지는 양국 갈등 현안의 중심에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내놓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가 자리해 있다. 과거사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로선 강경 보수·우익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갈수록 우경화하는 아베 정부와 필연적으로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는 '역사'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대담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10월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고 강제집행 명령 신청도 받아들였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한국 정부가 나서라고 맞섰다. 일본 기업도 배상을 거부했다. 일본이 경제 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같은 논리로 일본 정부가 요구한 양자협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과거사와 안보·경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대응'도 공식화했다.

접점·출구가 안 보인다…악순환에 빠진 '한일 관계'
대법원 판결 이후인 지난해 12월과 연초엔 일본 초계기가 저공 위협비행 도발에 나서는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우리 정부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타당하다고 판정하자 일본 정부가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최근 관계 정상화 조짐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청와대는 해법 마련을 위해 최근 강제징용 소송 원고(피해자) 측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통인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을 최근 임명한 것을 두곤 일본에 보낸 신호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도 지난 18일 북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일본과 미국, 한국이 힘을 합해야 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나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은 관계 개선의 모멘텀은커녕 갈등의 골만 재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외교 결례' 논란에도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신중한 언행이 중요하다"고 맞받으면서 날선 분위기로 끝났다.

요미우리신문은 오는 31일 싱가포르 아시아외교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추진되던 정경두 국방장관과 다케시 방위상의 공식 회담이 보류됐다고 28일 보도했다. 다음달 28∼29일 오사카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한일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가 관건이지만 장담하기 어렵다는 예상이 많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현재로선) 내용이 없는 만남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8.10.30.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8.10.30. [email protected]


6월말 만날까…한일 정상 '오사카 회담'에 달렸다②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기간에 개최될 것으로 기대됐던 한일 국방장관회담이 무산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와 맞물려 다음달 말로 추진됐던 한일 정상회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8일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이 (샹그릴라 대화 때)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의 정식 회담을 보류하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의 접촉만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안보회의는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다. 한일 국방장관의 만남은 지난해 12월 발생한 ‘초계기-레이더 갈등’ 이후 처음이다. 공식회담이 성사되면 초계기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복원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단순 접촉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일 국방장관 회담 불발은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사법부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지난 23일(현지시간) 한일 외교장관의 '빈손 회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풀이된다.

입장차만 확인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국방장관회담까지 무산설에 휩싸이면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도 불투명진 상황이다. 양국 정부는 다음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한일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데다 한일 모두 관계 개선 의지가 뚜렷한 만큼 타협점을 찾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국과 일본 모두 안보·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역내 최대 현안인 북한 문제에 대응하려면 한미일 안보협력이 긴요하다는 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독도=뉴스1) 안은나 기자 = 2018년 무술년(戊戌年)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아온다. 2019년 1월1일 첫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독도로, 독도 일출시간은 오전 7시26분이다. 새해 첫 일출을 맞이하는 독도 경비대를 비롯해 국민들 모두 새로운 희망을 품고 나아가길 기원한다. 더불어 2019년에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이어지고 한일 관계도 개선되길 바라본다. 경북 울릉군 독도 너머로 날이 밝고 있다. 2018.12.31/뉴스1  (독도=뉴스1) 안은나 기자 = 2018년 무술년(戊戌年)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아온다. 2019년 1월1일 첫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독도로, 독도 일출시간은 오전 7시26분이다. 새해 첫 일출을 맞이하는 독도 경비대를 비롯해 국민들 모두 새로운 희망을 품고 나아가길 기원한다. 더불어 2019년에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이어지고 한일 관계도 개선되길 바라본다. 경북 울릉군 독도 너머로 날이 밝고 있다. 2018.12.31/뉴스1
"文-아베 한일 정상간 '톱다운'으로 풀어야"③

전문가들은 악화된 한일 관계가 회복되려면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치적 결단’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사 문제에서 비롯된 여러 갈등 현안이 중첩돼 있는 만큼 '톱다운' 방식(정상외교)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8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한일관계 개선은 오로지 정상들의 결단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라며 “실무자나 장관 레벨에서 할 수 있는 상황은 지나갔다. 정상이 결단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들”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식으로 실마리를 주지 않으면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닌데 정부가 원칙론만 고수해서는 해결책을 절대 찾을 수 없다"며 "우리 정부가 무엇을 내놓느냐에 따라 (한일관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일 관계 현상 유지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일본학과)는 “정부가 전략적으로 (한일 관계 악화를) 방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 상황은 우리의 전략적 이익에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우리 정부가 명분(역사적 정의)과 실리(안보·경제 협력) 사이에서 정치적 선택에 나서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전 강제징용 배상판결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박철희 교수는 "ICJ도 해법이 될 수 없다"며 "판결이 어느 쪽으로 나오든 (한일 정상이) 정치적인 후폭풍을 감당하는데 (양국 정상 모두) 감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종문 한신대 교수(일본학과)는 "양국 정상이 서로 만나 ‘함께 노력해보자’는 정도의 외교적 언사를 주고받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일본은 그동안 회담을 안 하겠다고 해왔는데 (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일본이 우리 쪽에 보이는 일종의 양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 교수는 이어 "강제징용 문제는 구체적인 해법의 문제이기 때문에 조정하고 타협하고 협상하는 실무적이고 면밀한 작업이 필요하다"며 "두 정상이 같이 노력해나가자는 정도에서 악수라도 한 번 하는 게 이번 정상회담의 기대치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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