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는 짓' 판사 발언 부적절" 권고에 법원 "재판에 포함된 것"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2019.05.22 12:00
글자크기

인권위, 재발방지 대책 마련 권고했지만…법원은 "근거 없다"며 거부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판사가 법정에서 방청객에게 공개적으로 "주제넘는 짓을 했다"고 말한 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법관이 법정에서 하는 언행은 재판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이유에서다.

인권위는 해당 판사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지만 해당 법원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22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순천 청암대 김모 교수는 2017년 6월 같은 대학 강명운 전 총장의 배임·성추행 관련 재판을 방청하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당시 재판장인 광주지법 순천지원 김모 판사가 김 교수를 일으켜 세우더니 강 전총장에게 불리한 증거자료를 제출한 것과 관련해 10분간 여러 차례에 걸쳐 "주제넘는 짓을 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에 모멸감을 느낀 김 교수는 대인기피 증세를 보일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김 판사는 "김 교수가 이미 여러 차례 증거자료를 제출해 '제3자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설명했으나 고쳐지지 않아 재판을 방해하는 행위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김 교수가 앞선 공판에서 두 차례 증거자료를 제출해 주의줬으나 또 한 번 증거자료를 내자 이같은 발언을 했다는 설명이다.

인권위는 판사의 발언이 사회상규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 김 교수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통상 어른이 어린 사람을 나무라는 표현인 '주제넘는 짓을 한다'는 말을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김 교수에게 한 것이 자존감 훼손에 이른다고 봤다"고 밝혔다. 1970년생인 김 교수는 1980년생인 판사보다 10살 많다.

인권위는 당시 같은 법정에 있던 학생과 일반인이 김 교수의 감정에 공감한 점, 법관이 소송지휘권을 행사할 때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 등 고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 해당 판사가 소속된 수원지법과 사건이 발생한 광주지법에서는 이 발언이 재판 진행 과정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결국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법원은 "재판 절차에서 허용되는 소송지휘권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법정 언행이나 재판 진행을 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며 "법관의 법정 언행은 재판 범주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