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는 데 4년, 너무 길다" 아일랜드 국민투표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2019.05.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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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최소 4년 별거해야, '기간 축소' 여부 투표에… 아일랜드 이혼율 최저 수준

지난 2017년 3월  낙태 합법화를 촉구하는 아일랜드 시민들이 수도 더블린에서 시위에 나선 모습. /사진=로이터.지난 2017년 3월 낙태 합법화를 촉구하는 아일랜드 시민들이 수도 더블린에서 시위에 나선 모습. /사진=로이터.


동성결혼·낙태 등을 허용하며 보수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아일랜드가 이번에는 이혼을 국민투표에 부친다. 시민단체들은 복잡한 이혼 절차와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투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종교계는 결혼 제도가 사라질 수 있다며 반발한다.

20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오는 24일 이혼 자격 요건 축소, 재혼 허용 등을 높고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이혼을 법적으로 허용한 1995년 이래 24년 만에 다시 이혼 제도를 놓고 투표에 나섰다. 까다로운 이혼 자격 및 절차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아일랜드에서 이혼을 하려면 최소 4년이 걸린다. 최근 5년 중에 4년을 배우자와 별거한 뒤에야 법원에 이혼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아 가정폭력을 방조한다는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빠르게 이혼 절차를 마무리 짓고 가해자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최소 4년이 소요되면서 폭력에 노출되는 이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이혼을 겪은 이들은 소송비를 비롯한 금전적인 어려움은 물론, 정신건강 악화 등의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최근 이혼한 마이클 로스니는 "(시간이 지체되며) 불안을 느낄 때가 있었다"면서 "새로운 만남에 나서기도 어려우며, 정신 건강이 악화되고 금전 부담이 심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년 반 동안 법원에 40차례 방문했으며 소송비로 수만 유로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복잡한 절차를 피해 해외에서 이혼을 해도 제재가 따른다. 아일랜드 헌법은 해외에서 이혼한 이들이 아일랜드 내에서 재혼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사항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에 나서지 않는 이상 수정이 불가하다. 이 같은 강력한 제재로 아일랜드의 이혼율은 1000명당 0.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의 평균은 1.9명, 한국은 2.1명이다.

이번 투표는 이혼 자격 요건인 별거 4년의 기간을 단축시키고, 해외에서 이혼한 경우에도 재혼을 허용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묻는다. 단축을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의회가 그 기간을 정해 발표한다. 정부는 이를 2년으로 줄이는 것을 검토 중이다.


CNN은 "정부의 제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면 이는 아일랜드가 (자국 헌법에서) 가톨릭 교리를 거절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일랜드는 가톨릭 신자가 전체 인구의 78.3%에 달한다. 가톨릭이 원칙적으로 금지한 이혼도 헌법을 통해 58년 간 금지해왔다. 이혼 합헌을 놓고 세 차례나 국민 투표에 부쳤지만, 1995년 1%포인트도 안 되는 간발의 차로 겨우 통과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아일랜드는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2015년 국민투표를 통해 세계 최초로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지난해에는 낙태를 허용했다. 이혼 조건 완화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도 호의적으로, 찬성파가 우세할 전망이다.

그러나 종교계는 결혼 제도가 사라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톨릭 옹호단체인 이오나 연구소의 데이비드 퀸 소장은 "정치인들은 결국 2년마저 6개월로 낮출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결혼과 동거의 법적인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데니스 널티 주교는 "이번 투표는 결혼의 해체를 빠르게 하자는 것"이라면 "정부는 대신 결혼 준비와 결혼 후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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