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의영 피치마켓 대표/사진=피치마켓 제공
함 대표는 발달장애인 대신 '느린 학습자'라고 표현한다. 사람마다 각각 글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르다. 발달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로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속도가 다를 뿐이라는 얘기다.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글'을 쓴다. 기존에 있는 책을 쉬운 글로 풀어 새롭게 출간한다. 문장이나 단어만 바꾸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다음달부터는 매거진도 발간한다.
문장도 '홍이는 토끼 사냥을 가기로 했다. 홍이가 부모님에게 말했다'로 바뀐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례나 대화로 풀어쓰는 방식이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알퐁스 도테의 '어머니' 등 48권이 이 방식으로 새로 태어났다.
피치마켓의 사업은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 근무시절 독서모임이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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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대표는 "쉬운 글을 써보자 했는데 그 기준을 무엇으로 잡을지 모르겠더라"며 "모임 멤버 중 한 명이 발달장애인 동생이 있어 그 친구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써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UNEP를 그만둔 후 2015년 무작정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출간했지만 실패였다. 함 대표는 "'어렵다'면서 책을 공짜로 줘도 안 받고 반품도 되더라"며 "발달장애인을 모두 같은 수준으로 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장애인은 말은 잘 못하지만 글 읽는 수준이 뛰어나고, 또 다른 장애인은 이해도가 떨어졌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후 1년간 특수학교에 '학생' 신분으로 다니며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했다.
"'이 책 읽으면 어떤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이 가장 언짢아요. 비장애인들에게는 그런 질문 안 하잖아요. 그냥 읽을거리를 만들 뿐이죠. 장애인이 '배고파', '맛있어'라는 이야기만 하다가 저희 책을 보고 새로운 단어를 말하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한대요. 그런 변화에 뿌듯함을 느낄 뿐입니다."
피치마켓이 새롭게 구성해 펴낸 다니엘 디포의 '로빈스 크루소' /사진=방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