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2015년 '사랑이법' 개정으로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됐지만 여전히 아이 출생신고를 못하는 등 미혼부가 아이와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짙다. 한국 사회 곳곳에 있는 미혼부는 2017년 통계청 기준 8424명으로 미혼모(2만2000여명)보다는 수가 적은 편이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미혼부들 이야기를 담아봤다.
◇" 내 자식인데 출생신고를 못한다고?"
사진제공=뉴스1
◇ 초등학교 중퇴인데 법원을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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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부가 저소득층일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방의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다을이 아빠(가명·43세)에게는 5개월 된 남자아이가 있다. 당시 여자 친구는 출산 뒤 행방이 묘연했고 그는 아이를 혼자서 돌보게 됐다. 출생 증명서가 없어 그는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2015년 서영교 의원 대표 발의로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위해서 가정법원을 방문해야 한다. 초등학교 중퇴인 그에게 가정법원을 출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며 2015년 '사랑이법'의 주인공 '사랑이 아빠'는 "사랑이법이 뿌리부터 잘못됐다"고 했다. 미혼부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3~4년 걸리던 현실이 3~4개월로 바뀐 것은 분명한 성과지만 법의 한계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여전히 법의 문턱은 높고 법의 초점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잘잘못을 가리려는 것에 있다"고 했다. 사랑이법이 개선된 이후에도 대략적인 출생신고 인용률이 절반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 주변 미혼부 중 저소득층이 많고 그들 중 상당수가 학력이 낮아 문장력이 없다. 당연히 가정법원에서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미혼부에 대한 지원은 열악하다. 미혼부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 (부자 보호 시설·공동 생활 가정)은 현재 전국을 다해 3곳뿐이다. 불교(서울 선재누리)·개신교(인천 아담채)·구세군(서울 한아름)에서 운영하는 종교 재단이 전부다. 이곳들마저도 '미혼부를 위한 전문 시설'은 아니다. 미혼모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59 곳, 미혼모자 시설·미혼모자 공동생활 가정)과 비교해도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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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출생신고 제도 문턱 낮추고 복지 사각지대 없애야”
전문가들 역시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 미혼모 지원 네트워크의 유미숙 팀장은 "미혼모보다 미혼부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긴급 생계비 지원이 생겼지만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다면 이런 지원 조차 받을 수 없다"며 "이들은 매 순간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를 향한 사회 시선과 다르게 미혼부에 대한 시선은 차가워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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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출생신고 간소화를 언급했다. 그는 "저출산을 극복하겠다고 정책 기조를 내세우지만 미혼부와 아이가 복지사각지대에 처하는 것은 모순이다"고 했다. 이어 "2015년 사랑이법이 개정돼 전보다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법원에서 요구하는 진술서가 엄격해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미국, 뉴질랜드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출생과 동시에 의료기관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출생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아이의 출생등록을 우선시 하고 부나 모를 모르는 경우는 추후에 확인하는 제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