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총수의 퇴진과 '두려움 없는 경영'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2019.04.0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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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기업의 실패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가. 몇 사람이 모여 창업을 해서 큰 성공을 거둔 집단이 있다고 하자. 당연히 초기에는 서로 친구처럼 지낸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 사이가 주종관계로 엄격히 변하기 시작하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내부 언로와 소통이 막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나 기업, 개인이 스스로를 통제할 그 무엇이 없을 때도 실패가 시작된다. 공자는 그래서 천명을 두려워하고, 부모와 연장자를 두려워하며, 옛 성현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른바 ‘두려움의 철학’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항공사 총수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박삼구 아시아나항공 회장이다. 물론 두 항공사 총수가 갑자기 물러난 이유는 다르다.
 
조양호 회장은 최근 대한항공 정기주총에서 국민연금과 외국인주주 소액주주 등의 반대로 연임에 실패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해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하는 경우 주주로서 권한을 적극 행사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해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한 것에 대해서는 재계를 중심으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경영개입이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재무적투자자로서 역할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일과 관련해 ‘연금사회주의’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임을 들어 ‘정부의 입김’까지 들먹인다.
 
이런 비판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그 전에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전제돼야 하며 이런 점에서 정부는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그럼에도 조양호 회장의 재선임을 반대한 국민연금의 결정을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외국인주주와 소액주주들까지 대한항공과 조양호 회장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총에서 조 회장 퇴진이 결정된 날 증시에서 대한항공 주가가 오히려 올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본시장조차 조 회장의 퇴진을 반겼다는 뜻이다.
 
조양호 회장과 한진가는 그동안 ‘땅콩회항’과 ‘물컵갑질’은 물론 밀수와 탈세, 배임과 횡령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두려움 없는 경영’을 해왔고 그 결과는 조 회장의 퇴진으로 막을 내렸다. 어쩌면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일지 모른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은 외견상으로는 엄격해진 새 회계감사법 적용에 따른 ‘회계대란’이 도화선이 됐다.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한정’ 감사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급히 재검사까지 받았지만 악화한 경영실적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아시아나항공이 살기 위해서는 채권단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박삼구 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길을 선택했고 증시에서는 주가 상승으로 그의 퇴진을 환영하고 나섰다.
 
박 회장의 퇴진도 근본적으로는 ‘두려움 없는 경영’의 결과다. 2002년 회장 취임 이래 무모할 정도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시작으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최근 ‘기내식 대란’과 성희롱 논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두려움 모르는 경영의 연속이었다.
 
알리바바의 마윈은 이런 고백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CEO의 C는 Customer(고객), E는 Employee(직원), O는 Owner(창업주)다”라고. 그는 오너인 자신을 고객이나 직원들 보다 제일 뒤에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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