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마음 놓고 못 써요"…유명무실 '육아시간'

머니투데이 류원혜 인턴기자 2019.03.2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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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 양립' 취지의 필요한 제도…보완 필요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육아시간 제도요? 4살 된 아이가 있어 사용할 수 있지만, 담임이라 못 써요. 사용하면 조회나 종례 때 다른 교사가 대신 들어가야 하는데 미안해서 육아시간 사용이 꺼려져요."(서울 노원구 A고교 교사 박모씨·43)

지난해 '공무원 육아시간 제도'가 개정된 이후 교사 및 공무원들의 육아 부담은 한결 덜어졌지만 실제로는 마음 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육아시간 제도'란 출산을 장려하고자 만 5세(72개월) 이하 자녀가 있는 공무원은 자녀를 돌보기 위해 2년 범위에서 1일 최대 2시간의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그동안 생후 1년 미만 유아를 둔 공무원만 하루 1시간씩 육아시간을 사용해왔다. 지난해 7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20조)이 개정돼 자녀의 나이 범위가 만 5세(생후 72개월) 이하로 늘어났고, 사용 시간도 하루 2시간으로 연장됐다.

◇왜 사용 못하나… 담임제, 홍보 부족, 대체인력 필요



그러나 육아시간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해야 할 교사들이 정작 사용을 못하고 있다.

만5세 이하 자녀를 둔교사들의 나이대는 30대가 가장 많다. 비담임 교사보다 업무량이 많은 담임도 30대 젊은 교사들이 우선으로 맡는다. 담임이 되면 업무가 많아져 육아시간을 쓰고 싶어도 못쓰거나, 조회·종례시간 부재로 인해 다른 교사들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서울 B초교 교사 S씨(40·여)는 "학교마다 정해진 전담 교사 정원이 있는데 매년 다르다. 정원 초과로 담임교사가 되면 육아시간 사용은 곤란하다"고 전했다.


광주시 남구의 C중학교 교사 이모씨(28·남)는 "젊은 교사들이 담임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교사 수가 적으면 육아시간이 필요한 교사들도 담임을 맡는다"며 "담임교사는 업무가 많아 육아시간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시간 제도를 모르는 교사들도 많았다. '알아도' 못 쓰는 게 아닌 '몰라서' 못 쓰는 경우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이유다.

경기도 F중학교 교사 남모씨(26·여)는 "육아시간제도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며 "아직 미혼이지만 양육수당 같은 금전적 지원보다 더 와닿는 정책이다. 많이 홍보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D고교 교사 전모씨(33·남)는 "처음 알았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교사들은 육아시간 사용 교사가 주변에 있거나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잘 모를 것"이라며 "교육청에서도 주기적으로 공문을 보내고 학교에서도 제도사용을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등 홍보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대체인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외부 추가 인력을 통해 교사들 간의 갈등을 막아야 한다는 것.

A고교 교사 박모씨는 "다른 교사에게 업무가 과중되지 않도록 동료 교사가 아닌 외부 인력이 채워줘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 성북구 G고교 교감은 "육아시간 제도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담임교사가 부족한 건 사실"이라며 "교사들이 행복해야 학생들도 행복하다. 대안을 고려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 취지의 필요한 제도… 보완 필요
하지만 모든 학교가 육아시간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학교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는 것.

C중학교 교사 이모씨(28·남)는 "제도를 못 쓰는 분은 없고 안 쓰는 분은 있다. 업무가 많아 스스로 안 쓰는 경우가 많다"며 "육아시간 사용을 원하면 신학기 전에 되도록 교과 전담 교사를 맡는다. 다른 업무에 차질 없게 스케줄을 조율하면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다. 남교사들도 육아휴직은 자유롭게 쓴다"고 밝혔다.

B초교 교사 S씨(40·여)는 "담임이라 일이 많아 육아시간을 못 쓰고 있다. 다만 미리 얘기한 후 회의 때 업무 조절만 하면 사용가능하다"며 "저는 좋은 관리자를 만났지만, 눈치 주는 학교에서는 육아시간 사용이 녹록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의 D고교 교사 전모씨(33·남)는 "국공립학교 교사들은 '모성보호시간'(임신한 공무원 2시간 단축근무)이나 '자녀돌봄휴가'(연간 2일, 16시간) 등 많이 활용하지만, 육아시간을 쓰는 분들은 못 봤다. 사립학교는 더욱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육아시간 제도는 필수가 아닌 권고사항이라 학교 재량에 맡겨야 한다. 쓸 수 있어도 못 쓰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학교 내에서 잘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사처 관계자는 "육아휴직과 달리 대체인력을 고용하기 어렵다. 보완할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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