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내가 더 적게 받는다고? 다 때려쳐"

머니투데이 뉴욕(미국)=이상배 특파원 2019.03.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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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EU 탈퇴' 선택했다 '노딜 브렉시트' 위기에 처한 영국…보상 적다고 판 엎은 대가

"뭐? 내가 더 적게 받는다고? 다 때려쳐"


중남미 밀림에 '꼬리감는 원숭이'가 산다. 긴 꼬리로 나무가지를 감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카푸친'으로도 불리는 이 동물은 꽤나 영리해서 손으로 그림붓을 놀릴 수도 있다. 표정도 다양하고, 아플 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2003년 미국 에머리대의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센터 연구팀은 원숭이들에게도 '공정함'이란 감각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 연구 대상으로 뽑힌 게 카푸친이다.

연구팀은 카푸친을 둘씩 짝지었다. 그리곤 인간 사육사에게 작은 돌을 가져다 주면 오이 조각으로 바꿔 주는 훈련을 시켰다. 카푸친이 이런 거래에 익숙해질 때쯤 사육사가 패턴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짝을 이룬 카푸친 가운데 한 마리가 돌을 가져오면 다른 카푸친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두 마리 모두에게 오이를 준 것이다. 가끔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카푸친에게 달콤한 포도를 주기도 했다. 정작 돌을 가져온 카푸친에겐 오이만 주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일을 한 카푸친은 불만을 표출했다. 오이를 먹길 거부하고, 심지어 사육사의 얼굴을 향해 오이를 던지기도 했다.

어떤 카푸친은 더 이상 돌을 주워오지 않았다. 돌을 사육사에게 준다면 '최소한' 오이는 받을 수 있었지만, 이들은 불공정한 보상을 받느니 아예 굶는 쪽을 택했다. 게으른 파트너에 대한 복수로써 말이다.


동물의 세계에만 있는 일일까? 인간은 '합리적'인 만큼 카푸친과는 다르게 행동할까?

2016년 6월, 영국은 EU(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민의 52%가 '브렉시트'를 원했다. 그러나 '명예로운 고립'을 위한 여정은 그다지 명예롭지 못했다. 영국이 EU에 탈퇴를 신청한지 2년이 흘렀지만, 지금 영국은 아무런 준비도 안 돼 있다.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두차례나 부결됐다. '브렉시트 연기안'이 영국 하원을 통과했지만, 연기도 EU가 승인해야만 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29일 아무런 합의없이 EU를 떠나게 될 수도 있다. 식량대란과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노딜 브렉시트'의 길이다.

브렉시트가 연기된다고 '노딜 브렉시트'의 위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연장된 기간 동안 EU와의 합의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하면 영국은 결국 '노딜 브렉시트'란 재앙을 맞을 수 밖에 없다.

EU를 떠나겠다는 영국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영국은 EU에서 세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지만, EU로부터 받는 예산은 10위권 밖이다. EU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이런 불공정한 처우를 개선하려 했지만, 독일과 프랑스에 밀려 그러지 못했다.

EU에 가입한 대가로 쏟아져 들어온 이민자들은 영국인들의 '반EU 정서'에 불을 지폈다. 약 1400명에 달하는 백인 소녀들이 파키스탄 이민자들에게서 조직적으로 성적인 학대를 당한 이른바 '로더럼 아동 성착취' 사건이란 비극까지 벌어졌다.

영국인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EU와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유럽시민'이란 소속감보다 '대영제국 국민'이란 자부심이 더 큰 이들이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남긴 말이 이를 방증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3가지 중 하나다. 첫째 영연방, 둘째 영어 사용권, 셋째 유럽이다. 영국만이 이 3가지 모두에 속한다."

안타깝게도 브렉시트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그 결과를 뒤집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영국 정치권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제2국민투표 실시안도 하원에서 부결된 터다. 결국 영국과 EU가 할 수 있는 일은 브렉시트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 뿐이다.

만약 영국인들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브렉시트를 선택했다면 꼬리감는 원숭이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상대적으로 보상이 적다고 모든 걸 팽개칠 경우 어떤 신세가 되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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