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돈 또 잡아냈다"..12년 국정원 경력 위폐전문 은행원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2019.03.19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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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사진제공=KEB하나은행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사진제공=KEB하나은행


“많은 사람들은 위폐감별이 곧 ‘사양산업’이 될 거라고 말하죠. 신용카드, 각종 페이가 ‘대세’라는 생각 때문인데, 실제로는 화폐 유통량은 국력에 비례해 계속 늘고 있어요.”

각종 ‘00페이’가 신용카드를 위협하는 분위기지만 KEB하나은행의 위변조대응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호중 센터장은 정반대 이야기를 꺼냈다. 이 센터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위변조 화폐 전문가다. 그의 말대로 연간 국내 화폐 유통잔액은 120조원으로 2005년보다 5배 불어났다. 한국 방문객의 꾸준한 증가, 국력에 비례한 원화 수요 급증 등이 원인이다.



화폐 유통량이 늘 수록 ‘진짜돈’인지 확인하는 위폐감별의 역할도 중요해 질 수밖에 없다. 최근 벌어진 말레이시아 링기트화 위폐 사건이 그렇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남아시아 위폐가 대량 발견된 것. KEB하나은행 강남소재 지점에 평소 거래 고객이 물품대금으로 받은 100링기트 권종 100매(한화 277만원) 환전을 요청했다. 공항환전소가 아닌 일반 영업점에서 링기트화 환전은 흔치 않은 일. 해당 지점에서 본점과 연결된 ‘원격 감정’ 시스템으로 위폐 판독을 의뢰했다. 원격으로 확인해 본 결과 위폐 가능성이 높아 실물을 본점으로 가져 와 위변조 확인 기계를 돌렸다. 결과는 같았다. 이 센터장은 “고객이 놀랄 수 있으니 차분하게 ‘위폐로 의심되면 돌려 드릴 수 없게 돼 있다’고 설명해 동의서를 받은 후 국정원과 경찰서에 수사 의뢰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각종 범죄 연루 가능성 등으로 이 사실은 수주일 동안 ‘대외비’였다.

이 센터장이 이끄는 위변조대응센터는 국내 은행 중 유일한 위폐전담 부서다. 하루 최대 100만장의 화폐를 전국 영업점에서 매일 수거해 위변조 여부를 확인한다. 진폐라는 사실이 확인된 돈만 다시 영업점에서 쓴다. 원화와 외화를 매일 전수조사 하는 곳은 국내서KEB하나은행 밖에 없다. 이 센터장이 2007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도 보고되지 않은 100달러 위폐(슈퍼노트)를 잡아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시스템 덕분이다. 이 센터는 “공기청정기로 미세먼지를 걸러내야 하는 것처럼, 금융시장에 건강한 ‘혈액’을 공급하고 화폐의 신뢰를 보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였다.



이 센터장은 1995년 외환은행에 입사해 6년간 근무하다 2001년 국가정보원으로 이직했다. 이 센터장은 “연봉은 깎였지만 국정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지원했는데 3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을 했다”고 돌아봤다. 국정원에서 금융범죄와 관련한 국제 범죄조직 모니터링을 하다 2005년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한 사건이 터지면서 위폐 관련업무를 맡았다. 미국은 북한이 슈퍼노트를 만들어 BDA를 통해 테러 자금을 세탁했다고 봤는데, BDA는 이 때문에 파산했다. 이를 계기로 이 센터장은 위폐와 관련한 각종 교육, 강연을 담당하며 전문성을 키워 2013년 KEB하나은행에 입사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여서 ‘친정’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센터장은 전담 부서 신설을 설득해 지금의 위변조대응센터를 만들어냈다. 은행은 대당 3억원짜리 기계를 4대 들이는 등 총 20억원을 투자했다. 이 센터장은 이제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서울에 17명, 지방에 20명 담당 직원이 있는데, 그간 남직원 위주로 전문가를 양성했다면 지금은 여직원도 6명으로 늘었다”며 “조만간 여성 책임자도 나올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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