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백기사의 변심, 뿔난 FI에 경영권 '흔들'=교보생명 설립 60년 만에 가장 큰 위기라고 불리는 이번 사태의 시발점은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보생명은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가 팔려 경영권을 위협당할 처지가 되자 FI(재무적투자자)를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이후 FI 측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교보생명에 IPO를 서두르라고 압박해 왔다. 신 회장은 망설였다. 2022년 도입이 예정된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대비한 자본확충과 증시 상황 등을 이유로 장고를 거듭하다 보니 약속된 기한에서 3년을 훌쩍 넘겼다. 상장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투자금 회수가 급해진 FI는 결국 지난해 11월 신 회장을 상대로 2조122억원 규모의 풋옵션을 행사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신 회장으로서는 투자금을 돌려주려면 상장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다. 하지만 FI 측과 분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상장마저 불투명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경영권 '딜레마' 빠진 신창재 회장=고 신용호 전 교보생명 명예회장은 1958년 8월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신창재 회장은 고 신 명예회장의 장남이지만 경영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즉 서울대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재직중이었다. 신 회장은 1996년 암 투병 중인 선친의 간곡한 설득으로 학교와 병원을 떠나 뒤늦게 교보생명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신 회장은 1998년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후 1999년 이사회 의장으로 보직을 바꿨다. 그러다 2000년 5월 다시 회장에 복귀하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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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은 보험업계에서 '성공한 2세'로 통한다. 취임 초 잦은 경영진 교체 등으로 잡음도 있었지만 재무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영업과 조직을 탄탄히 해 대형사로서 입지를 굳건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선친이 별세한 후 1800억원이 넘는 거액의 상속세를 현물출자하고, 2대 주주였던 대우그룹의 파산으로 불거진 대우인터내셔널의 보유 지분 매각 과정을 거치며 크고 작은 경영권 위협에 시달려 왔다.
한때 신 회장 개인 지분율만 45%, 특수관계인 지분율까지 합치면 64.5%에 달했던 교보생명에 대한 영향력은 현재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도 36.91%로 40%가 되지 않는다.
경영권을 안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주회사 설립이 유력하게 검토되면서 우리은행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등 대형 M&A(인수합병) 시장에 자주 등장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번번이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상장 일정을 연기해 온 것도 상장을 하면 외부 경영 간섭에 민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뜻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관측하기도 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신 회장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지키는 것이 곧 회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권을 위해 상장을 미뤄오다 결국 경영권이 위협받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라고 말했다.
FI 측이 풋옵션 행사를 철회하지 않으면 신 회장은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상당량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원만한 합의를 이뤄 IPO가 성공하더라도 현재보다 지분율이 더 낮아질 수 있다. 최대주주 지분율 하락에 따른 경영권 안정성 여부도 IPO 과정에서 여전히 변수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