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전월세 건보료 개편 밀어붙여 될 일인가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2019.02.27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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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설익은 정책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시장에 혼란을 부르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우기 십상이다. 지난해 학부모들의 반발로 철회된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가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선행학습이라는 이유로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하려 했다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자 부랴부랴 없던 일로 했다.

하물며 국민 부담과 직결된 조세·준조세 정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역사에서 보듯 조세·준조세 정책은 비합리적이거나 불공평할 경우 단순한 불만을 넘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의 대혁명 등 세계 3대 시민혁명도 모두 국민 수용성과 형평성을 무시한 세금에서 비롯됐다. 그만큼 조세·준조세 정책은 세밀하게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 당연히 그 과정도 투명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소리소문없이 추진한 전월세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 산정방식 개편은 이런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12월분부터 전월세 가입자의 건보료 산정 시 국토교통부로부터 넘겨받은 확정일자 자료를 적용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하는데 관련 내용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적용 시기나 대상을 알리는 보도자료도 낸 적이 없다.

준조세인 건보료 산정방식 개편을 비밀리에 추진한 것도 문제지만 가입자간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최근까지 전월세 가입자의 건보료는 KB부동산시세 등을 활용해 추정한 시세 중 낮은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해왔다. 주택 매매 거래와 달리 전월세 거래는 신고의무가 없어 정확한 임대현황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임대목적으로 사용하는 전국 주택 673만가구 중 정부가 확정일자 자료 등을 통해 공부상 임대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주택은 22.8%(153만가구)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전월세 가입자의 건보료 산정방식 개편이 형평성 있게 제대로 운영될 리 없다. 실제 건보공단이 지난해 12월분 건보료 산정에서 확정일자 자료를 적용한 전월세 가입자는 3700가구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월세 가입자가 약 102만가구라고 하니 0.3% 정도만 적용된 셈이다.

특히 이중 3400가구는 종전보다 건보료가 올랐다고 한다. 정부가 전월세 거래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건보료 산정방식을 바꾸면서 일부 가입자만 건보료 부담이 커진 것이다. 건보공단은 국토부의 확정일자 자료를 매달 추가로 반영해 형평성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크게 나아질 여지가 많지 않다. 오히려 확정일자 신고를 먼저하면 손해라는 부정적 인식만 퍼질 수 있다.

사실 확정일자 자료로 전월세 가입자의 건보료를 산정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된 것은 2014년부터다. 조세 사각지대인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와 맞물려 함께 추진됐다. 당시 임대소득세와 건보료 정상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과세 기초가 되는 정확한 임대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최근 국토부가 들고 나온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제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던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관련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반발을 우려한 박근혜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유야무야됐고 결국 5년이라는 정상화 시간만 낭비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기둥 없이 지붕을 올릴 수 없듯이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도, 건보료 정상화도 임대현황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순서다.
[광화문] 전월세 건보료 개편 밀어붙여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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