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 넘은 수소충전소, 충전기에 발목?

머니투데이 세종=권혜민 기자 2019.02.26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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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충전량 측정하는 유량계 오차 최대 20%, 소비자 피해 방지 위해 기술 개발 시급…시장 위축 가능성 있어 법정계량 표준 지정은 '신중'

이승민 서울 상암수소스테이션 운영소장이 30일 머니투데이의 '넥쏘' 취재차량에 수소를 주입하고 있다./사진=장시복 기자이승민 서울 상암수소스테이션 운영소장이 30일 머니투데이의 '넥쏘' 취재차량에 수소를 주입하고 있다./사진=장시복 기자


정부가 수소충전소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선도국에 뒤처진 수소충전 기술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수소가스의 충전량을 정밀 측정하는 유량계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향후 본격적으로 수소거래 시장이 확산될 경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 업체들은 수소 충전기(디스펜서)에 부착되는 수소가스 유량계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국내에 설치된 수소충전소 14곳은 모두 일본 등 외국산 유량계 제품을 수입해 쓰고 있다.



유량계는 기체나 액체가 흐르는 양을 측정하는 장치다. 수소충전소에 쓰이는 수소유량계는 수소가스가 충전되는 양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수소 판매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수소가스가 얼마나 주입되는지를 알아야 요금에 맞는 양의 수소를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소충전소용 유량계 관련 기술은 전세계적으로 개발 속도가 더디다. 700기압에 이르는 고압의 수소가스를 주입하는 특성상 측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유량계의 오차가 적게는 5%에서 크게는 20%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수소 충전기 관련 자체 기술이 없어 외국산에 의존하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진남 경일대 신재생에너지학부 교수는 "수소 유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고압의 수소를 고속으로 충전하기에 유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며 "현재 측정 오차가 크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이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수소 유량 측정의 오차를 평가하고, 정확도를 개선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 중이다. 국표원은 상반기 중 정밀 장비 개발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후 각 충전소를 돌면서 유량 오차가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점검할 계획이다.

국표원은 이를 토대로 수소충전기의 '법정계량' 지정도 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법정계량은 계량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정부가 법으로 정하는 절차다. 오차관리나 내구성 등을 따져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한 계량기는 상거래에 쓸 수 없다. 현재 저울, 수도미터, 가스미터, 주유기, 전력량계 등이 법정계량기로 지정돼 관리받고 있다.


수소충전기가 법정계량기에 포함되면, 수소유량을 측정하는 일종의 '표준'이 설정되는 만큼 충전소별로 충전량에 차이가 발생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향후 수소차 보급이 늘어나 상업용 충전 시장이 확산될 경우 거래의 공정성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아직 수소충전소 숫자가 제한적인 만큼 당장 법정계량 지정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게 국표원의 입장이다. 현재 국내 수소충전소가 14기로 보급이 더딘 상황에서 너무 이른 시점에 표준화를 도입할 경우, 일종의 '규제'로 작용해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탓에 지난해 국제법정계량기구(OIML)에서 수소 계량 관련 국제 표준을 마련했지만 해외에서도 아직까지 이를 도입한 사례는 없다. 수소차 보급에 앞서 있는 일본도 2030년쯤 수소충전기를 법정계량기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지훈 국표원 연구사는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라 수소충전소 설치가 확대되고 수소 상거래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경우 소비자들의 거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법정계량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면서도 "너무 성급히 추진할 경우 배보다 배꼽이 크게 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보급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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