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조 시장 형성하는 ‘가상현실’…공감력 높이고 트라우마 제거까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2.22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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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두렵지만 매력적인’…가상현실이 열어준 인지와 체험의 인문학적 상상력

수십 조 시장 형성하는 ‘가상현실’…공감력 높이고 트라우마 제거까지


가상현실은 이제 더 이상 ‘놀이’로 국한하지 않는다. 그 세계는 현실 너머 즐기는 유토피아적 놀이터가 아니라 현실 사람들의 공감을 이끄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해와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예술가 크리스 밀크가 만든 360도 가상현실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시드라에게 드리운 구름’은 당신을 요르단의 난민 캠프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12세 어린이 시드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도를 통해 듣는 8만 명의 숫자를 비로소 실감한다.



저자는 각종 심리학 실험을 통해 가상현실이 인간에게 강한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통찰한다. 가상현실이 실제 경험과 다른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경험 창조자라는 얘기다.

저자는 “이용자의 뇌는 실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리적으로 활성화한다”며 “가상현실 속 강도 높은 사건은 인간에게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가상현실이 기존 미디어와 가장 큰 차이점은 ‘현존감’이다. 공감을 이끄는 데는 ‘그곳에 있는’ 느낌을 그대로 구현하기 때문.

저자는 노인 차별에 대한 가상현실 실험에서 ‘단어 연상 과제’라는 방법으로 참가자의 생각 편향을 측정했다. 노인이 된 참가자들은 노인의 일반 묘사 때보다 더 긍정적인 단어를 구사했다. ‘주름진’보다 ‘현명함’을 택한 것이다.

공감력을 키우는 최상의 방법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상상하는 ‘조망 수용’이다. 가상현실은 실제와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조망 수용 효과가 크게 나온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삶을 경험할 수도, 노숙자의 삶을 경험할 수도, 심지어 농장의 가축이 되어 볼 수도 있다.


화장실 휴지를 만드는 벌목 체험을 통해 휴지를 20% 덜 사용하는 효과나 허리케인 참사 현장을 통해 뉴스를 더 정확히 이해하는 저널리즘의 판도 변화 역시 가상현실이 낳은 풍경이다.

더 긍정적인 효과도 맛볼 수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입은 환자들은 ‘실제상황 노출법’으로 치료 효과를 얻고, 비디오게임의 그래픽 엔진을 이용한 ‘브레이브마인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쟁을 경험한 퇴역 군인 2000명 이상이 도움을 받기도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 효과에도 가상현실을 이용할 수 있다. 절단된 손발이 여전히 아프다고 느끼는 ‘환상 사지 통증’ 환자는 멀쩡한 팔이 있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 환상 속에서 손을 이완시키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식이다.

가상현실은 주류 기술로 자리 잡은 뒤 향후 10년 내 600억 달러(67조 5000억원)의 가치를 형성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하지만 위험도 상존한다. 가상현실로 가짜 뉴스를 양산하거나 가상현실의 가변적 속성을 악용하는 논픽션 이야기 공급자로 인한 피해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실제 저자는 인종차별 실험에서 노인차별 실험과 달리,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결과를 얻었다.

‘좋은 가상현실 콘텐츠’를 얻기 위해 저자는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것이 가상현실에 있을 필요가 있나’를 자문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말 것’과 ‘안전하게 하라’가 나머지 제시안이다.

인간은 가상현실의 두려움을 딛고 매력적인 미래를 열 수 있을까. 저자는 “가상현실의 가능성은 당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윤리적으로 고려할 사항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렵지만 매력적인=제러미 베일렌슨 지음. 백우진 옮김. 동아시아 펴냄. 352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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