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줄 알았던 종이학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구미시 이야기입니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유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종이학을 접고 어른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씁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메카로까지 불리던 구미시의 시민들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수 십 년간 활력과 성장을 체험했기 때문에 구미시민들이 체감하는 지금의 어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구미시는 SK하이닉스 유치를 위해 100만㎥ 공장용지 무상임대를 포함한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효과가 있을까요? 불행히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수도권’에 사업장이 있어야 하고 이왕이면 서울 안에서 근무할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단순히 급여가 높다고 지방근무를 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회사가 결정하면 묵묵히 가족과 이별하고 임지로 부임하는 그런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회사에 사표를 내고, 급여가 더 적더라도 서울과 수도권의 다른 직장을 찾게 됩니다. 시대와 세대가 달라졌습니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아도 전 세계 대부분에서 사람들은 대도시로 몰리고 있습니다. 탄탄한 중소기업이 잘 발달해있고 중소규모의 도시들이 중심이 됐던 독일마저 최근에는 청년들은 마이스터로 대표되는 기능인력으로서의 삶 보다는 대학진학과 대도시 거주를 선호하면서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폭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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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학력 인적자본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상과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대도시의 복잡성과 연결망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면접촉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더 대도시로 몰리고 있습니다. 기업 역시 이러한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지역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집행해 왔습니다. 지역특화산업육성, 스마트특성화기반구축사업 등 일일이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많은 사업을 진행해왔고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산업육성을 위한 정책과 사업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활동하는 공간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구미시가 가지고 있는 산업중심지로서의 경험, 좋은 인프라, 젊은 인구 구조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소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도록 변화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과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해주며, 공감할 수 있는 규칙과 규정에 따른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그런 지역과 공간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한다면 어린이들이 더 이상 기업유치를 위해 종이학을 접지 않아도, 지금의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구미를 찾는 기업과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