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맛’, 부모님이 원한다고 해서

이지혜 (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9.02.1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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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맛’, 부모님이 원한다고 해서


TV 조선 ‘연애의 맛’은 여러 프로그램들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다. 40~50대에 접어드는 김정훈, 김종민, 구준엽, 이필모 등 남자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은 SBS ‘미운 우리 새끼’와 비슷하고, 그들이 여자 출연자들과 100일 간의 계약 연애를 한다는 설정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연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여성 출연 배우 정연주가 있긴 하지만 후반부에 투입되고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출연자들의 관계가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끝날지 궁금하게 만드는 건 SBS ‘짝’, 채널 A ‘하트 시그널’, Mnet ‘썸바디’ 등 비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연애 프로그램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이필모는 ‘연애의 맛’을 통해 만난 서수연과 지난 9일 결혼했다. SBS ‘불타는 청춘’에 함께 출연했던 강수지와 김국진이 연인이 되고 결혼한 것과 비슷한 일이다.

‘연애의 맛’은 지난 1월 31일 시청률 5.8%(닐슨 코리아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필모와 서수연이 웨딩 화보를 촬영하는 내용이 방영된 날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통해 계약 연애는 출연자의 결혼으로 진짜가 됐고, ‘연애의 맛’은 혼자 사는 남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실제 결혼까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그 결과 남자 출연자들의 어머니들은 희망을 얻는다.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부모를 ‘45세 노총각 아들 뒷바라지 N년 차’로 소개하거나, 여자 출연자와 만남이 있을 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아들의 결혼에 간절한 것으로 그린다. 그들이 이필모와 서수연의 결혼에 환호하게 되는 이유다. ‘연애의 맛’은 명절 종합세트처럼 여러 관찰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전하면서, 그 과정의 끝에 남녀의 결혼을 놓는다. 어머니는 결혼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출연자들의 일상은 패널들의 목소리를 통해 “외로움과 어둠에 파묻혀 있고 싶은” 생활처럼 여겨진다. 이필모와 서수연의 결혼은 ‘연애의 맛’이 바라보는 비혼인에 대한 시각에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았다. 결혼을 하지 않는, 최소한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삶은 그들의 어머니 세대의 시각을 통해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진다.



‘연애의 맛’ MC 중 한 사람인 박나래는 MBC ‘나 혼자 산다’에도 출연 중이다. ‘나 혼자 산다’라면 출연자가 게임을 하는 모습은 그저 여가 생활처럼 여겨졌을 일이다. 그러나 ‘연애의 맛’에서 출연자가 대형 모니터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면 “내 아들이었으면 100% 등짝 스매싱”, “연애 대신 게임으로 성취감을 얻는다” 같은 말을 듣는다. ‘나 혼자 산다’가 1인 가구의 삶을 존중한다면, ‘연애의 맛’은 일정한 나이가 됐는데도 결혼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으로 치부한다. 인 것처럼 치부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비혼은 결혼으로 가야만 하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박나래 스스로 ‘나 혼자 산다’에서 증명했듯, 비혼인으로서의 삶은 ‘연애의 맛’의 어머니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무조건 외롭거나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필모와 서수연의 결혼이 축복받아야 할 일인 것과 별개로, ‘연애의 맛’은 결혼하지 않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결혼을 하라고 밀어붙인다.

그러나 오히려 걱정되는 쪽은 여전히 ‘연애의 맛’을 느낄 준비가 안 돼 있는 이 프로그램의 남자 출연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장소를 선택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파스타를 마치 국수 먹듯 먹거나, 음식을 먹으며 쩝쩝거리며 먹는 등 식사 예절을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반면 남자 출연자들보다 모두 10살 이상 나이가 적은 여자 출연자들은 남자들의 단점에 매우 관대하다. 심지어 상대가 “나는 소리 내면서 밥을 먹는다”고 하자 같이 소리를 내며 밥을 먹어 주는 경우도 있다. 남자는 나이가 많지만 아직 철이 안 들었고, 여자는 나이가 적지만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감싸주는 구도가 이어진다. 여자 출연자들의 배려심은 그들의 좋은 성품을 입증한다. 하지만 ‘연애의 맛’은 아직 결혼이 아닌 연애도 잘 풀어나가지 못하는 남자들에게 결혼할 수 있다고 하는 한편, 여자는 그런 남자의 서툰 부분들을 품어주는 것을 미덕으로 묘사한다. 결혼이 그럼에도 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연애의 맛’은 출연자의 부모 세대 바람을 자막과 패널들의 목소리로 대신에 전달하고, 그런 시선을 통해 그래야 한다고 긍정한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연애의 맛’ 이전에 정말 많은 관찰 에능 프로그램들이 각자 다른 관점에서 일상과 결혼에 대해 다뤘다. 부모님의 바람에 맞춰 과거로 돌아갈 수만은 없는 법이다.



글. 이지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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