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40년"이란은 왜 죽음을 외치나…美 '부패·억압 40년' 비아냥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2019.02.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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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 40주년 맞아 이란서 대규모 반미 시위

지난 1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 혁명 40주년 기념행사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이 연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지난 1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 혁명 40주년 기념행사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이 연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미국에게 죽음을" vs "40년의 부패. 40년의 억압. 40년의 테러"

지난 11일(현지시간) 이란 혁명 40주년을 맞아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40년 전 혁명의 구호 '미국에게 죽음을'이 그대로 제창됐다. 하지만 저주의 대상이기도 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혁명 40년이 '40년의 부패와 억압 기간'이라며 특유의 독설과 비아냥을 쏟아내 여전한 갈등을 드러냈다.

혁명 집회일 당일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이란 전역에서는 수백만 명이 길거리로 나왔고, 일부는 성조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이날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미국에 적대적인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이란 시민들은 지난 40년 간 매 혁명 기념일마다 반미감정을 표출해왔다. 이처럼 이란 시민들이 반미감정을 품는 이유는 이슬람혁명을 통해 쫓겨난 이란 왕정을 미국이 지지하는 등 이란 정세에 개입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이란의 마지막 왕인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지난 1953년 내부 쿠데타로 인해 축출됐었다. 그러나 영국의 정보기관인 MI6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다시 쿠데타를 기획, 팔라비 왕을 복원시키고 그를 지지했다.

팔라비 왕은 대표적인 친영·친미파로 이란의 서구화 및 근대화를 꾀한 인물이다. 그는 '백색혁명'(1961~1978)을 통해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지역 유지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해 토지 개혁도 감행했다. 그러나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배회했고 정권의 부패로 양극화가 심해지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인 자유도 억압되면서 쌓인 불만은 1978년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구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슬람과 이란의 전통적 가치가 붕괴되는 것을 우려한 성직자들은 미국과 영국 등 외세의 개입을 용납할 수 없다며 시위를 주도했다.



결국 테헤란의 시위는 백만 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1979년 2월 11일 이란 군부가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며 혁명이 막을 내렸다. 팔라비 왕은 이집트로 망명했고 혁명 지도자이자 종교가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며 이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다.

혁명 직후 보수적인 이란 성직자들과 군부가 정권을 잡으며 서구문명의 영향력을 차단시키려 했고 반미감정이 고조됐다. 특히 팔라비왕이 같은 해 암 치료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자 일부 시위자들은 팔라비왕의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며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 66명을 인질로 삼았다. 이로 인해 양국의 관계는 악화됐고 미국은 이후 수십 년동안 이란에 제재를 부과해왔다.

양국의 관계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조건 아래 대이란제재를 해제하며 개선됐다. 그러나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며 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40년의 부패. 40년의 억압. 40년의 테러"라고 적으며 "이란 정권은 40년간 실패만 양산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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