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표준체중에 처방되는 '이상한' 비만치료제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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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다이어트, 괜찮으세요?-①]당뇨병·비만치료제 '삭센다', 광풍 휩쓸려 표준체중에게도 마구 처방… 병원, 삭센다펜 1개당 약 7만원 마진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빨간날]표준체중에 처방되는 '이상한' 비만치료제
#키 160cm에 60kg, '과체중' 여성 직장인 A씨는 최근 '다이어트 주사'라고 불리는 삭센다(Saxenda) 주사에 관심이 생겼다. 유행하는 다이어트를 모두 해봤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찰나, 주변에서 비만치료제인 삭센다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검색해보니 '큰 부작용이 없다'며 일반 다이어트 치료제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정상 체중으로 보이는 인기 유튜버 역시 삭센다를 맞았었다는 걸 알게된 뒤 A씨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최근 다이어트 치료제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가 각광받고 있다. 남녀노소, 뚱뚱하거나 마름에 상관없이 삭센다를 맞는다. 하지만 본래 당뇨병 치료제에서 기인한 고도비만 치료제가 큰 제한없이 사용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17일 의약품 시장 조사 업체 아이큐비아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삭센다 매출액은 17억여원으로 비만치료제 전체 시장에서 6.5% 점유율을 기록했다. 삭센다 돌풍에 기존 비만치료제의 매출은 크게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가 비만 자가치료주사제 '삭센다'를 불법판매·광고한 병·의원을 수사 중이다. 2018.11.16. (사진=서울시 제공)서울시가 비만 자가치료주사제 '삭센다'를 불법판매·광고한 병·의원을 수사 중이다. 2018.11.16. (사진=서울시 제공)
◇삭센다, '제 2 당뇨병·고도비만 치료제'
지난해 3월 출시돼 품귀 현상까지 빚으며 현재까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삭센다는 '주사제'다. 즉 약물이 든 펜에 일회용 주사침을 끼우고 0.6~3.0㎎가량을 하루 한 번 복부·허벅지 등에 주입해야한다.



삭센다는 최초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개발과정에서 체중 감량 효과가 크게 나타나 비만 적응증을 추가 획득했다. 즉, 기본적으로는 당뇨병 치료제고 추가적으로 발견된 효능이 비만 치료다. 삭센다는 GLP-1 효능제 작용제 계열로 리라글루타이드 성분이다. 이 성분은 몸에 '배부르다'는 느낌을 줘 식욕을 줄이고 음식 섭취를 줄인다.

제약사가 5358명의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이 체중 감소 효과를 봤으며, 체중이 5% 이상 감소한 환자 비율은 63%에 달했다. 대부분 초기 12~16주 내에 체중 감량 효과가 있었고, 이후 3년 동안 체중 감량 효과도 유지됐다.

◇'만병통치약' 삭센다?… 처방 난립
이쯤 되면 비만에 '만병통치약'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임상실험이 3년까지만 진행돼서다. 비만인들은 살을 빼더라도 장기적으로 전의 몸무게로 돌아가기 쉬운데, 임상실험이 3년까지의 데이터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삭센다는 일반적으로 '내성 없는 약'이라거나 '부작용 없는 약'이라고 홍보되며 대대적으로 처방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작용으로는 △두드러기 △현기증 △빠른 심장 박동 △메스꺼움 △구토 △위장 문제(더딘 소화) △발열 △설사 △황달 △두통 △피곤 △저혈당 △배뇨시 고통 △구역질 등이 있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부작용도 있다. △급성 알레르기 반응 △호흡 곤란(입술·혀·목 등의 붓기) △췌장염 △담낭질환 △신장문제 △우울증과 자살충동 △갑상선암 △췌장염 △유방암 등이다.

직장인 신모씨(30)는 삭센다를 1달간 썼다가 부작용 때문에 투약을 중지했다. 신씨는 "부작용이 없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엔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면서 "우울증이 없었는데 삭센다를 투약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울증이 생겼고 갑자기 죽고 싶어졌다. 큰일날 것 같아 투약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도 부작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A씨는 "삭센다를 쓰다가 2주쯤 됐을 때 만성 담마진이 생겼다"면서 "부작용이 없다고만 들었지 알러지 반응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글을 썼다. B씨는 "부작용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면서 "구토가 너무 빈번하고 신물이 자꾸 올라와서 투약량을 줄이다가 아예 멈췄다"고 올렸다. C씨 역시 "삭센다 한 번 맞자마자, 부작용으로 탈수까지 갈 정도로 구토를 엄청 했다"고 말했다.

/사진=식약처 블로그/사진=식약처 블로그
◇손 쉬운 처방… 서울시, 지난해 11월 규제
이 같은 부작용은 잘 고지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임상실험 결과 발견됐던,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이었다.

더 큰 문제는 비만환자 외 과체중도 아닌 사람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극심한 오남용의 우려다. 삭센다의 임상시험은 비만도 지수인 체질량지수(BMI) 27㎏/㎡ 이상인 18세 이상 성인만 대상으로 했고, 주 타깃은 '고도비만'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삭센다의 주 타겟층은 BMI가 30㎏/㎡ 이상인 사람이고 만일 고혈압 및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체중 관련한 질병이 동반한 이들만 BMI 27㎏/㎡이상일 때도 처방받을 수 있다.

식약처도 비만 환자와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는 과체중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임상실험은 비만인 이들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정상체중 범위의 사람이 사용했을 때의 효과 등은 검증되지 않았다. 문제는 효과 뿐만 아니라 나타날 부작용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삭센다 열풍'이 불면서 병원에서 미용목적으로도 비만도와는 상관없이 처방·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이 삭센다를 의사처방없이 판매한 5개소, 전문의약품 광고금지 규정을 위반해 불법광고한 19개소의 병·의원을 의료법, 약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을 정도다.
강남의 한 의원이 전문의약품인 삭센다를 건강식품 판매하 듯 광고했다(서울시 제공).강남의 한 의원이 전문의약품인 삭센다를 건강식품 판매하 듯 광고했다(서울시 제공).
예컨대 강남구 B의원의 경우 직원이 삭센다를 간단히 설명후 판매해 의사진료는 보지 않아도 되냐고 묻자, 마치 선택사항인 듯 '원하면 보게 해주겠다' 했다. 의사 처방없이 삭센다를 판매하여 적발된 병의원 대부분은 추가 구매를 위해 다시 방문하자 간단한 인적사항 확인 후 의사 진료없이 재판매했고, 일부 의원은 가족이 대신 사러와도 된다고 하기도 했다. 강남구 C의원 등 19개소는 전문의약품은 대중광고가 금지됨에도 홈페이지에 광고하고 있었다.

◇'돈 되는' 삭센다… 아직도 쉬운 처방 난립
당국의 이 같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삭센다 처방은 난립 중이다. 비만 치료와는 크게 관계 없는 피부과·성형외과·가정의학과·내과·척추전문병원 등에서 삭센다가 팔리고 있었으며, 처방 받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난 14일, 기자가 찾아간 서울 중구의 한 피부클리닉 의원 접수처에 삭센다 홍보물이 게시돼있다. /사진=이재은 기자지난 14일, 기자가 찾아간 서울 중구의 한 피부클리닉 의원 접수처에 삭센다 홍보물이 게시돼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지난 14일, 기자가 서울 중구의 한 피부클리닉 의원을 찾아가 삭센다 처방을 요구했다. 의사는 삭센다를 처방해 주면서 "아무 부작용이 없는 안전한 약"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기자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BMI 27㎏/㎡ 미만일 때는 효과가 없다고 하던데 이게 사실이냐"고 묻자 의사는 "아니다. 비만도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효과가 있다"면서 "부작용과 내성이 없으니 장기적으로, 오래 삭센다 주사를 처방받아 맞으라"고 말했다. 식약처가 허가한 내용 (즉 체질량지수(BMI) 30㎏/㎡인 비만환자나 고혈압 및 당뇨병, 이상지질혈증이 있는 BMI 27㎏/㎡ 이상인 사람에게만 삭센다를 투여하도록한 것)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병원들이 삭센다 처방에 열성인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직접 시술하는 주사제 외 전문의약품은 의사는 진료비만 받고 처방전을 발행해 약국에서 판매하므로 별도의 추가수익(마진)이 없지만, 삭센다의 경우 병원에서 직접 판매해 약에 직접 마진을 붙이고 판매 수량에 따른 수익이 발생한다.

삭센다의 원가는 1펜당 7만원 정도로 알려져있지만,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이 강남 등 15개 의료기관에서 삭센다주사를 구매한 결과 가격은 1펜당 12만원에서 16만5000원으로 평균 14만2500원이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삭센다는 허가된 적응증 내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며 "연령기준과 용법, 용량 등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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