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뉴시스】박홍식 기자 = 이철우(왼쪽부터) 경북도지사, 장세용 구미시장, 권영진 대구시장이 16일 오후 경북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상생 신년음악회'에 앞서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 구미 유치'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9.01.16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K하이닉스 (177,800원 ▲7,200 +4.22%)의 반도체클러스터 신공장 후보지 선정을 놓고 보이는 정치권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저마다 '우리 동네' 유치를 기정 사실화하고 지역 여론을 선동한다. 일자리와 경제효과를 말하고 배후단지와 대학의 발전 청사진을 그린다. 하지만 그 안에 기업은 없다. 명운을 건 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을 흔드는 '구태와 악습'의 되풀이뿐이다.
하지만 각 지역 언론 지상에서는 이미 수십 차례 반도체 공장이 지어졌다 사라졌다. 특히 과열되는 구미 여론에 냉가슴을 앓던 SK하이닉스가 결국 국회를 찾았다. 후보지로 구미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직접 전하기 위해서다.
120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건 다름아닌 SK하이닉스다. 그런데 공장을 지을 지역도 아닌 곳의 지역구 의원을 만나 해당 지역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SK가 공장 입지에 대한 의사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먼 지방으로는 가기 어렵다는 SK하이닉스 입장은 처음부터 확고했다. 회사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SK는 처음부터 경기 평택 이남에는 공장을 지을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평택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이다. 사실상 입지의 남방한계선을 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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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불가론'의 핵심은 인력수급이다.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청년인력 확보가 어렵고 전공자 비율도 크게 낮아진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어렵게 공장을 짓고 인력을 구성해놨는데 수도권 경쟁사로 줄지어 인력이 유출된다면 악몽이나 다름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겉으로 강해 보이지만 정작 규제에 매우 약하고, 지자체는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 보유한 규제 권한이 많다"며 "지자체의 사소한 지적에도 공장 운영 상황이 휘청이는데, 당장 몇 가지 혜택을 약속받고 공장을 짓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정치권의 기업 흔들기에 다른 목적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오는 29일 지방사업 중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대상을 발표한다. 지자체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를 염두에 두고 SK하이닉스 유치에 복수 지자체가 대거 발을 들였다는 지적도 있다. 어차피 얻지 못할 하이닉스지만 일단 유치전이 뛰어들어 여론을 모은 후, 이를 발판으로 예타 면제를 얻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지역구 주민에게 '할 만큼 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 무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자체와 여야 정치권은 매번 대규모 투자가 예정될 때마다 기업을 쥐고 흔든다. 오히려 투자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투자해달라는 청와대 외침이 무색하다.
해법은 단호한 지방육성 정책이다. 분명한 수도권 분산과 지방 소재 기업 육성 대책 없이 기업의 지방행만을 압박하면 답이 없다.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기업이 입지 발표가 임박한 시점까지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휩쓸린다면 경영 리스크는 결국 기업이 떠안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초일류 기업 중 하나인 SK하이닉스가 이런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면 여타 기업의 피해사례는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이라며 "구태를 되풀이하는 정치권에 정말 일자리 창출과 기업 투자 유도 의지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