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파문 대한체육회 "마지막 각오"에 시민단체 "물러나라"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19.01.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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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쇄신안에 '싸늘'한 반응…'성폭력 줄었다'는 어이없는 실태조사에 비판 일어

스포츠문화연구소,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등 체육계 시민단체들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올핌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 회의실 앞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스포츠문화연구소,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등 체육계 시민단체들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올핌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 회의실 앞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회장님 사퇴하십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오전 대한체육회 정기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 등장하자, 시위대가 침묵을 깨고 소리를 높였다.

체육·문화계 시민단체 10여명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퇴', '실효성 있는 성폭력 대책은 책임지는 자세에서', '성폭력 문제 방관·방조한 대한체육회가 책임져라' 등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던 중이었다.



이 회장은 표정 변화 없이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은 체육계 성폭력 사태와 관련해 가해자 영구제명과 형사고발 등 쇄신안을 발표하며 세 차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마지막 각오로 쇄신" = 이 회장은 이날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빙상연맹 전반을 심층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성폭력 등 부당한 행위를 은폐하거나 방치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이 회장은 "성폭력 가해자를 영구 제명하고 국내·외 취업을 완전히 차단하도록 할 것"이라며 "전수 조사 결과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인 개선방안도 내놨다. 국가대표 선수촌 내에 여성 훈련·관리관을 배치하고 숙소와 일상생활 관리체계도 전면 개편한다고 했다. 성폭력 진상 조사와 예방 교육, 사후 처리까지 모두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겠다고도 밝혔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올핌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해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올핌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해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시민단체 "반성 없는 쇄신안은 무의미…체육회장 사퇴해야"= 이 회장과 대한체육회를 바라보는 시민단체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번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시각과 고민, 반성이 전혀 없다는 평가다.

이대택 국민대 체육대학 스포츠건강재활학과 교수 겸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이번 사안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며 "'잘못했다'고는 하는데 반성하는 내용도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회장은 시스템 개선책을 이야기했지만 시스템이 없어서 문제가 터진 게 아니라 작동이 안 됐기 때문"이라며 "이 회장 쇄신안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고 밝혔다.

김덕진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도 "이 회장이 (발표한 쇄신안이 신뢰를 얻으려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과감한 결단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연대와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가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문화연대와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가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스포츠계 폭력·성폭력 줄어" 실태조사에…시민단체 "진상조사·조치 언급 없어" =대한체육회가 이달 8일 발표한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역시 사태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시민단체는 지적했다.

"최근 1년간 체육계 폭력·성폭력이 줄었다"며 자화자찬했으나, 폭력·성폭력 경험 여부만 조사할 뿐 실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나 조치는 설명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조사 결과는 최근 1년 동안 국가대표 선수·지도자들의 폭력·성폭력 경험 비율이 2년 전에 비해 감소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2018년 폭력·성폭력 경험 비율은 각각 26.1%, 2.7%로 조사됐다. 2016년 조사 결과 폭력 경험은 26.9%, 성폭력은 3%였다. 대한체육회는 2010년부터 2년마다 한 번씩 이 조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문화연대·스포츠문화연구소·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이사회에 앞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사건 진상조사는 어떻게 진행했고 가해자에게 어떤 조치를 했는지, 보호자 조치는 어떻게 했는지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체육회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상범 중앙대 체육대학 스포츠과학부 교수 겸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몇년 전부터 국가인권위에서 체육계 폭력·성폭력에 수차례 권고했지만 변한 게 없다"며 "실태조사나 인권센터 설립 등은 '체육회가 뭔가 하고 있다'고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코스프레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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