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③] 신청후 배상까지…6차례 장벽 넘는 '험로'

뉴스1 제공 2019.01.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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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허가+본안심리 6심제 거쳐도 승소는 '불확실'
"원고측에 불가능한 입증책임 요구하는 것도 문제"

[편집자주]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BMW 차량화재, 라돈 침대 사태 등을 거치면서 국내에서도 집단소송제 확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부터 현재 증권 관련에 한정된 집단소송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아 법안 개정에 나섰다. 올해 관련 법안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화할 전망인 가운데 국내 집단소송제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리잡고 있는 집단소송제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올바른 개정 방향을 6회에 걸쳐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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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지원 기자 = 현 증권관련 집단 소송은 여러 이점과 별개로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사문화가 우려될 만큼 집단 소송이 진행되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다.



2005년 도입된 증권집단소송제는 2018년 2월까지 제기된 건수가 10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시행 이후 4년간 단 한건의 신청도 없다가 2009년 키코 손실을 은폐한 제조업체 진성티이씨 피해자들의 신청으로 첫 스타트를 끊었다. 이중 소송허가를 받은 사건은 6건, 이중에서 배상에 이르게 된 사건은 3건이다.

재경지법 A 판사는 피해자나 변호사부터 집단소송 신청에 소극적인 데 대해 "대륙법에 익숙한 국내 법조인들도 집단소송은 이론적으로만 배워서 활용을 잘 하지 않는다"면서 "(신청이) 오는 게 적으니까 인증이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꺼리는 더 큰 이유는 집단 소송 허가를 결정 받기부터 본 심리에서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장애 요소가 산적하기 때문이다. 소송 허가 심리에만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허가를 받기까지 까다로운 요건을 통과해야만 한다.

판사가 신속하게 허가 결정을 내리더라도 절차 자체가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1심이 집단소송을 허가하더라도 피고 측이 불복하면 허가 심리만 대법원까지 3심을 거치게 된다. 결국 집단 소송은 소송 허가에 3심, 본안 심리에 3심 총 6심 제도로 운영되는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단소송을 법원이 허가하면 피고 측은 즉시항고를 하는데 이 경우 집행정지의 효력이 있기 때문에 소송 진행이 안된다"며 "피해자들은 신속한 구제를 원하는데 이 점에서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본안 심리에 들어가더라도 승소 가능성은 불확실하다. 특히 불법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기업이 독점하고 있음에도 원고에 피해 입증 책임이 과도하게 부여된 것은 오랜 문제로 지적됐다. 일반 공동 소비자 소송에서 이 같은 문제는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법원은 지난 해 12월18일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불법 판매 손해배상 항소심 소송에서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62명 중 13명에게만 10만원의 배상액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김주호 팀장은 "법원이 피해자인 원고들에게 사실상 불가능한 입증책임을 요구했다"며 "정작 피해의 범위와 정도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판단한 법원의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법관이 거액 배상을 판결하는 데 인색하고 원고의 소송 비용이 여전히 크다는 것도 장애 요소로 거론된다. 현재 소송 비용은 패소자 부담 원칙을 유지하는데 패소 가능성을 고려하면 피해자로서는 집단소송 제기 자체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나마 증권 분야는 미흡하더라도 집단 소송 제도가 있어서 일부 피해자들의 구제가 이뤄졌지만 다른 분야는 이마져도 없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식품 분야, 박근혜 정부는 일반 부문 집단소송제 확대를 국정 과제로 추진했으나 기업 활동을 위축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 박경준 변호사는 "경제단체 등에서 소권이 남용되어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거나 타격을 받는다고 하면서 강력한 로비를 벌인다"며 "그러나 집단 소송은 원래 일어나야 할 소송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경지법 B판사는 "법원이 기업 관련 소송을 맡을 때 어쭙잖게 경제 기여 부분을 고려해 과도하게 신중할 때가 있다"며 "엄청난 수의 원고가 있는 집단소송을 맡게 되면 아무래도 피해 부분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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