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자락길은 누구나 쉽게 산책할 수 있도록 보행하기 힘든 길은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나 있는 길은 나무와 숲을 그대로 살린 흙길 등으로 등산객을 맞고 있다.(사진 중앙은 일반 자연상태의 보행로, 나머지는 나무데크로 만든 길이다)./사진=오동희 기자
조선왕조실록(인조실록) 인조 2년 2월 11일 기록을 보면, '관군이 적(평안병사 겸 부원수 이괄의 반란군)과 안현(鞍峴: 현 안산)에서 싸워 크게 이겼다'고 돼 있다.
기록에는 적병 400여급(級)을 베고 300여명을 사로잡았으며, 남은 무리는 수구문(水口門, 현 광희문)을 거쳐 달아났다고 돼 있다. 이괄의 혁명의 꿈이 사라진 곳이다.
안산이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계기는 지난 2013년 11월 이 산 주위로 전국에서 가장 긴 7km에 달하는 무장애 자락길이 만들어진 이후다.
폭 2m에 경사도 9도 이하의 나무 데크 길을 지그재그로 만들어 계단이나 장애물을 없앤 '무장애 자락길'은 보이지 않는 혁신이었다. 계단이 일부라도 있는 다른 둘레길이나 자락길과는 달리 장애인이나 어린아이들이 휠체어나 유모차에 타고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장애'를 없애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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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왕산에서 무악재 구름다리를 지나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7km에 달하는 안산 자락길을 돌면서 문득 든 생각이 "이 길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의 틀이지만, 규제로 느껴지지 않는구나"라는 것이었다.
안산 자락길의 장점은 나무길(규제) 속에 갇혀 있었지만, 갇힘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고 그 길로만 다니라고 담을 쳐놓았지만, 굳이 그 길을 벗어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자락길은 방문자를 편안하게 했다. 각종 휴식처와 문화공간도 함께 담고 있다.
그 길을 벗어나지 않고도 충분히 자연과 교감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을 모두 얻고, 정상을 밟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이 자락길을 보면서 규제는 막고 가두는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가는 편리한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산길의 험난함을 굳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가장 편하고 좋아서 굳이 규제를 벗어나 사잇길로 빠지고 싶은 생각을 벗어나게 했다. 길을 잘 다듬어 놓아 다른 길을 찾지 않게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좋은 규제'다.
좋은 규제는 힘 있는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모두 그 길을 따라 걷게 하는 것이다. 더러는 빠르게, 또는 천천히 걷기는 하겠지만, 빠른 사람은 빠른 대로, 느린 사람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래도 그 산의 정상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게 제대로 된 규제다.
산과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입산금지' 간판을 붙여놓고, 그 근처 어디든 기웃거리면 모두 잡아 가두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폭압적 규제다.
자연을 보호하는 목적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이를 후대에도 물려줘 오래 함께 살도록 하는 것이지, 자연만 보호해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각종 규제입법이 추진 중이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상법, 공정거래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안 등에 재계는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아우성이다.
왜 그러는지 들어볼 일이다. 법과 규제는 자연히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이 우습게 보여지거나 그 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갖은 편법을 쓰게 된다. 정책 당국자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기업인들은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관리자의 선민의식이다.
하지만 그 기업인들은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경쟁하고 있다. 규제도 국제기준에 맞게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말 안장 안(鞍, 革+安)자를 나눠보면 혁신(革)을 하면 편안(安)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안산 자락길이 보여주는 교훈이다.
오동희 산업1부장 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