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후진국' 오명에도 폐쇄병동 없어…시민 감염 무방비

뉴스1 제공 2018.11.21 06:05
글자크기

환자 무단이탈 계속되도 '추격전'만…관리망 취약
정부 예산요구 3년째 모르쇠…국비치료비 연 5억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 News1 DB© News1 DB


지난 19일 새벽 1시쯤 서울의 한 결핵전문병원에서 40대 결핵 환자가 무단 이탈해 잠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병동을 이탈한 김모씨(40)는 최근 3개월간 서북병원에서 활동성 폐결핵 치료를 받던 환자였다.

병원은 김씨가 관리가 허술한 새벽 시간을 틈타 사복을 입고 병원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염 우려로 국가가 세금을 들여 치료하고 관리하던 김씨가 병원을 맘대로 이탈할 수 있었던 건 결핵전문 공공병원임에도 별도의 폐쇄병동이 없어서다.



서울 은평경찰서가 신고를 접수하고 추적에 나섰지만 김씨는 이틀째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동선추적과 탐문수사를 병행하고 있지만, 김씨는 휴대전화까지 끈 채 자취를 감췄다.

활동성 결핵은 전염성이 높아 '격리 치료'가 필요하지만, 환자의 병동 이탈을 막을 방법이 없어 이탈자가 나타날 때마다 병원과 경찰이 환자를 뒤쫓는 '추격전'만 되풀이되고 있다. 그사이 시민들은 결핵 전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데도 정부는 무책임하게 예산 지원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결핵발생률(인구 10만명당 77명)로 '결핵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의 '보건 안전망'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무단이탈' 계속돼도 '추격전'만 계속…인력난도 심각

결핵 환자의 '탈출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4일에는 서북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결핵 환자 A씨(59)가 환자복을 입은 채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발견됐다.


A씨가 결핵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수백명이 하차했고, 보건당국은 승객들을 상대로 역학조사에 나서는 소동을 빚었다.

끊이지 않는 '이탈자'에 대한 해법은 알고 있음에도 보건당국과 병원은 추격전 외에는 해결책도 없다.

질병관리본부(질본)와 서북병원은 3년 동안 국회와 정부에 '결핵 환자의 무단이탈을 막을 수 있도록 폐쇄병동을 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서다.

서해숙 서북병원 진료부장은 "전염 가능성이 높은 결핵 특성상 환자가 입원하면 주치의의 '퇴원 허락' 없이 병동을 이탈할 수 없게 돼 있다"면서도 "정작 이탈을 방지할 수 있는 폐쇄병동이 없어 결핵환자는 출입구가 개방된 일반병동에서 진료를 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반병동은 소방법에 따라 모든 출입구를 의무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결국 의료진이 직접 병동을 돌며 이탈을 막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치료가 무상제공되고, 매일 결핵 환자를 대해야 하는 환경에 인력이 충분할 리가 없다. 서 진료부장은 "병원 의료진 대부분이 결핵 양성 판정을 받을 만큼 근무 환경이 좋지 못하다"며 "김씨가 병원을 빠져나갔을 때도 주말 근무자는 간호사 2명뿐이었을 정도로 인력난도 심각하다"고 전했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폐쇄병동' 요청해도 감감무소식…국비도 달랑 5억원

결국은 '돈' 문제다. 질본과 병원이 요청하는 '폐쇄병동'도 건립비용 40억원이 없어서 3년을 끌었다.

질본 관계자는 "서울시와 정부가 각각 20억원씩 부담하는 방향으로 폐쇄병동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서울시는 비용을 준비했지만, 정부 예산이 마련되지 않아 지금도 국회를 찾아가 강력히 요구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결핵전문 공공병원에 책정되는 국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질본에 따르면 취약계층에게 결핵치료를 무상제공하는 병원은 서북병원을 비롯한 결핵전문병원 3곳과 지방의료원 4곳을 합쳐 모두 7개 병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책정되는 국비는 연간 5억원에 불과하다.

서 진료부장은 "결핵을 단순한 '질병관리'로만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결핵 치료는 최대 2년까지 걸려 환자들이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끼기 쉽고, 많은 환자가 옳지 못한 생활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아 다각적인 치료가 필요한데 제도와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질본 관계자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결핵환자가 많지만 '환자 관리망'은 여전히 취약하다"며 "결핵 환자 한 명만 이탈하더라도 일반인에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환자를 철저히 관리·치료할 수 있는 시설 구축이 절실하지만 지금도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다"며 "올해 안에는 반드시 부족한 예산이 확보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