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철 디자이너
법원이 가상자산 거래사이트가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거래 중단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후폭풍이다. 가상자산 거래사이트의 유일한 통제수단이던 '실명확인계좌 서비스'가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정부는 국회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9일 '코인이즈'가 NH농협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계좌의 입금정지 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코인이즈'는 실명확인계좌가 아닌 법인계좌를 통해 투자자 자금을 받아 온 가상자산 거래사이트로 농협은행은 거래 중단 통보에 반발, 가처분신청을 냈다.
금융당국은 법인계좌는 자금세탁, 횡령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지난 1월말 실명확인계좌 서비스를 도입했다. 은행들에게는 법인계좌를 사용하는 가상자산 거래사이트들의 은행 거래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은행 거래가 중단되면 거래사이트들은 투자자 자금을 받을 방법이 막혀 사실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은행이 거래사이트의 목줄을 쥐고 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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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확인계좌를 통한 가상자산 거래사이트 통제가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정부는 추가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우선은 국회에 제출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 통과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특금법 개정안은 가상자산 거래사이트들의 신고 의무와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22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특금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곧바로 소위를 통과하질는 불확실하다. 설사 통과되더라도 당장 가상자산 거래사이트들을 통제하기는 어렵다. 법 시행시기가 공포 후 3개월 후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금법 개정안은 가상통화 가이드라인과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거래사이트에 대해 '은행들이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법원이 코인이즈의 가처분을 인용할 이유도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의무가 아닌 재량이라는 이유였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최근 상황들을 감안해 법안 심사 과정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관련업계에선 은행들이 거래사이트들이 법인계좌가 아닌 실명확인계좌를 사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은행들이 실명확인계좌 발급을 하지 않고 있으니 거래사이트들은 법인계좌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것.
은행들은 거래사이트들이 요청하면 실사를 거쳐 실명확인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하지만 지난 1월 소위 빅4(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 사이트에 발급 후 추가 발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실명확인계좌 발급에 소극적인 이유는 정부 눈치 때문이다. 정부는 '은행들의 실명확인계좌 발급을 막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해 왔지만 은행들은 가상자산에 부정적인 정부 입장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실명확인계좌 발급을 기다리던 거래사이트들이 법인계좌를 기반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전체 거래사이트들의 숫자는 연초보다 증가한 상태"라며 "정부가 명확하게 은행들에게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