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때문에 증권거래세 인하 불가"…주식 포기한 정부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8.11.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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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243>증권거래세 하나 인하 못하는 정부…증시 글로벌화·활성화·금융규제개혁 모두 포기

편집자주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알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세수 공백 때문에 증권거래세 인하는 불가하다.”

지난달 30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증권거래세 인하에 대한 입장을 묻자 세수 감소의 이유를 들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김 부총리는 “증권거래세 0.1%(p) 인하에 2조원 정도의 세수가 좌우된다”며 “이론적으로 검토 가능한 사안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증권거래세 인하는 (주식) 양도소득세 문제도 있어 조금 더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의 재정을 맡은 기재부의 수장에게서 이 같은 답변이 나오는 게 이상할 것은 없다. 기재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세수 감소이기 때문이다. 국세통계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걷힌 증권거래세는 약 4조7000억원으로, 증권거래세율을 0.1%포인트 인하할 경우 2조1000억원 정도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기재부는 증권거래세 인하에 앞서 주식 매각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수 공백이 커진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걷힌 주식 양도소득세는 2조3000억원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양도소득세에 비해 세수를 예측하기 쉽고 매년 일정하게 안정적으로 거둬들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증권거래세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정부가 세수를 이유로 증권거래세 인하를 통한 한국 주식시장의 글로벌화와 활성화 그리고 금융규제개혁을 모두 포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1966년 이후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줄줄이 증권거래세가 폐지됐는데 그 배경은 증시의 글로벌화와 규제완화를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이웃 일본도 1989년부터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인하해 1999년 완전 폐지했는데, 자국내 투자자들의 국외 유출을 막고 외국 투자자들의 자국내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증시와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과 홍콩, 대만도 최근 증권거래세를 인하해 우리보다 낮다. 중국은 2016년 0.1%로 증권거래세를 낮췄고, 대만은 2017년 0.15%로 인하했다. 한국은 40년째 0.3%다.


이들 국가들은 한결같이 증권거래세(거래비용)를 낮춰서 자국 증시의 글로벌화와 활성화를 꾀했다. 증권거래세를 낮추는 것은 금융규제개혁의 일환이기도 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세수를 볼모로 주식시장 활성화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우리 증권거래세는 40년째 요지부동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증권거래세 인하로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쟁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증권거래세가 낮아지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증권거래세 인하를 통한 한국 증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저 ‘세수’ 타령만 되풀이 하고 있다.

증권거래세는 본래 거래비용으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의 기본원칙과 무관하다. 주식 매매에서 손실이 나도 거래세를 내야 하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따라서 세수 목적과 상관없이 적정 수준이 결정되는 게 옳다.

물론 세수 목적 때문에 증권거래세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들도 일부 있다. 사실 증권거래세는 1694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을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증시 글로벌화와 활성화, 규제개혁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세수 목적의 증권거래세 역할은 크게 축소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증권거래세가 주식거래량과 가격변동성, 유동성 및 가격효율성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투기 세력이 날뛰어 단타 매매가 잦아지고 증시가 지나치게 과열되면 증권거래세를 인상해 주식거래를 안정시키고, 반대로 증시가 활력을 잃고 장기간 거래 침체에 빠지면 증권거래세를 인하해 주식거래를 활성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2007~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증시가 폭락하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학계와 국회, 정부를 중심으로 투기적인 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를 억제하기 위해 증권거래세를 재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주식을 매매할 때 거래비용(증권거래세)이 미미하면 단돈 몇 십원의 차익을 얻기 위해 매입과 매도를 무수히 반복하는 투기적인 초단타매매가 성행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가격발견(price discovery)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주가가 왜곡될 수 있다. 이때 거래비용(증권거래세)을 높이면 주식 매매에 따른 비용 부담 때문에 투기적인 단타 매매를 어려워져 주가 왜곡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주식시장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는 수시로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히 드러난다.

지금껏 역대 정부는 집값이 떨어지면 서둘러 대출완화와 각종 세제혜택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되살리려는 대책을 내놓았고, 반대로 집값이 과열되면 각종 혜택을 축소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대책을 발표해 고삐를 죄었다. 문재인 정부도 6·19대책, 8·2대책, 9·13대책 등 지난 1년 반 동안 연이어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국내 증시가 장기간 하락하며 침체 국면에 빠졌는데도 증시 활성화를 위해 어떠한 대책도 내놓은 게 없다. 정말로 주식에 관심이 없다.

정부의 주식 무관심은 지난달 증시 폭락 때도 재연됐다.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경제부처 부별심사에서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코스피지수가 2000선 아래로 떨어졌을 때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고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우성을 많이 쳤다”며 “(증시에) 악재가 터질 때 정부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담화문이라도 발표해 정부가 어떻게 대비하겠다는 게 필요하지 않았냐”고 증시 폭락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했다.

답변에 나선 김 부총리는 “정부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국제금융시장을 모니터링 하면서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할 수 있는 조치도 시나리오별로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코스피지수가 2000 아래로 떨어진 것에 대해선 정부가 빨리 움직이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정부의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음을 일부 인정했다.

정부가 ‘세수’를 이유로 증권거래세를 인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증시의 글로벌화와 활성화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주식을 포기한 정부(주·포·정)이다. 주식에 무관심하기 때문인데, 무관심이 지나치면 무책임한 정부가 되고 만다.

만약 증권거래세 인하의 효과를 몰라서 그런 거라면 주식에 무지하기 때문인 거고, 알고도 ‘세수’ 때문에 못하는 거라면 무능한 정부 소리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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