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그리하면 '까마중 열매'라도 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8.11.17 07:49
글자크기

<160> 한영옥 시인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

[시인의 집]그리하면 '까마중 열매'라도 될 수 있을까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한영옥(1950~ )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은 등불 같다. 늦은 오후, 밖이 사위어가는 줄도 모르고 시집을 읽다보면 시 한 편 한 편이 불을 밝혀 마음을 환하게 비춰준다. 때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슬픔과 기쁨으로 일렁이기도 하지만 "무르지 않은 온화함과 무르지 않은 따뜻함, 무르지 않은 폭신함"('시인의 말')의 언어와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마음에 폭 빠져버린다. 시인과 담소를 나누며 느릿느릿 골목길을 산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망설임 끝에 겨우 접은 망설임이었는데
함께 발맞추며 걸어가던 길 툭 끊어들더니
슬며시 동반(同伴)들 저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방향을 튼 뒤 재빠르게 멀어져간다
망설임 끝에 어렵사리 펼친 의욕이었는데
가파르게 멀어져 뒤따르기 어려웠다
저쪽은 무성해질 것이다, 화사해질 것이다
버려진 것이라면 분명 까닭이 있겠는데
미처 깨달아내지 못한 뭣이 뾰족하겠는데
황망하게 사방을 둘러봐도 등 비빌 데 없었고
봄이 오면 이곳도 꽃물결 찰랑댈 거라는 짐작뿐
겨우 그뿐, 우둔하게 땅만 보며 짐작이 가난했으니
매끈한 대열에 끼어든 것 애초에 무리였으리
끊어진 자리에 못박혀서 저쪽 굽어보는 갸웃한 모가지
혼자만 모르는 그 뭣이 분명 있었던 게지, 있었던 게야
한 해 두 해 답답하다 오백 년 다 돼가는 느티나무
그냥 그 자리에서 꽃 짐작만 거듭 환해질 뿐
헤헤거리며 앞지르기 잘했던 전생(前生)은 깜깜할 뿐.
- '우둔' 전문




더도 덜도 아닌
알맞아도 진정 알맞은
주홍 햇살을 목걸이 하고
가볍게 날아가는 이 산책의
국화차 한잔 맛을 누리려고
그동안 손가락질한 만큼
손가락질당한 거라는 편안한
균형 감각을 되찾으려고
한없이 어지를 대로 어지른
마루와 부엌을 닦고 쓸고
마음도 쓸어내면서 기어코
꺼이꺼이 울부짖은 것이지
유영하며 분비물과 배설물을
즉시즉시 말끔하게 씻어버리는
물고기 한 마리의 매끈한 기분,
바람이 몸 구석구석을 살펴주는 쾌감
본바탕은 좋은 사람이야, 본바탕은
그만하면 다들 괜찮았어. 괜찮았어.
- '산책의 기분' 전문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인은 자주 상처를 받는다. 그들은 "본바탕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무성하고 화사한 것을 좇는, "매끈한 대열"에서 주목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류에 휩싸이지 않는 시인은 "우둔하게 땅만 보며 짐작이 가난했"기 때문에 "끊어진 자리에 못박혀" 모가지를 갸웃거리며 동반들이 사라진 쪽을 굽어본다. 우둔이라 했지만 우직으로 읽힌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는 법이다. 시인은 혼자 남겨두고 "방향을 튼 뒤 재빠르게 멀어져간" 동반들을 원망하기보다 "혼자만 모르는 그 뭣이 분명 있었던 게지, 있었던 게야"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한 해 두 해 답답"하게 보내는 동안 시인은 스스로 늦게 꽃을 피워 "꽃물결 찰랑"대는 무성하고 화사한 "오백 년 다 돼가는 느티나무"로 성장한다. "머리를 푹 묻고 싶"('아니었지만,')은 사람들에게 어깨를 빌려줄 만큼, "오너라 슬픔"('오너라, 슬픔') 하며 담대하게 상처를 품을 줄 알 만큼 넉넉해진다.

문제는 "매끈한 대열"을 좋아하는, “본바탕은/ 그만하면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 거목이 된 시인 곁으로 모여들어 "헤헤거리"다가 다시 방향을 틀고, 그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는 것. 본디 섬약한 시인은 "우울을 깔고 앉아 한시적으로 무르익"('센티멘털리스트들')기도 하지만 산책을 하며 "균형 감각을 되찾으려" 애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마루와 부엌을 닦고 쓸고/ 마음도 쓸어내면서 기어코/ 꺼이꺼이 울부짖"는 것은 한(恨)을 안으로 삭이는 우리네 여성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집안에서 꺼이꺼이 울며 분노와 감정의 찌꺼기를 모두 쏟아낸 뒤 집밖으로 나선 산책은 그나마 "매끈한 기분"이라 다행이다.



"바람이 몸 구석구석을 살펴주는 쾌감"으로 집을 나서 걷던 시인은 "환하게 내려오"(이후 '환한 골목')는 "봄 골목"을 본다. 아니 환한 봄 골목을 올려다본다. "타박타박 올라가 알아보았더니" 노부부가 "담벼락에 담쟁이 몇 가닥 올리"고 있다. 그 따스한 풍경에 시인의 "생의 온도"는 봄에서 여름 "초록 담벼락"에서 "싱그럽게 쿨렁거"린다. "평강의 기운이 절로 환해진 것"이라지만 '우둔, 심란, 극진, 단념, 사심, 적막, 난처, 냉정, 애절, 처량, 슬픔, 씁쓸한, 측은'(시 제목) 같은 시인의 어둑한 마음도 어느새 환하게 따뜻해진다. 역시 사람이 풍경이 되는 장면은 "오욕과 칠정의 질척임"('나를 따라 오르렴 -비무장지대에서')을 뛰어넘어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된다.

마음 푸근한 사람들과 마주앉아
조근조근 주고받던 틈서리에 피었던
말 꽃의 내음 순한 향내를

잃을세라 집으로 돌아와서
깨끗한 수건에 잘 끼워두었습니다
서랍 첫 칸에 잘 접어두었습니다

귀하게 모아둔 수건 몇 장 있으니
비참의 기분 툭툭 털기도 좋고
벌떡이는 심장 누르기도 좋습니다


앞으로 몇 장은 더 모아야겠다 싶어
사람 만나러 가는 저의 매무시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곤 합니다.
- '깨끗한 수건을 모으다' 전문


"무심한 듯 유심한 듯 그럭저럭 오가던 말들"(이하 '이유도 없이')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시인은 "말도 사람도 두들기다 흩어질 뿐"임을 경험으로 안다. 흩어지고 남은 사람들은 시인처럼 마음이 푸근한 이들이다. 그들과 "마주앉아/ 조근조근 주고받던 틈서리"에 핀 "말 꽃의 내음 순한 향내"를 "집으로 돌아와서/ 깨끗한 수건에 잘 끼워" "서랍 첫 칸에 잘 접어"둔다. 시인은 시방 사람을 수집하고 있다. 귀하게 모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겪는 "비참의 기분"이나 "벌떡이는 심장"을 안정시켜는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것. "앞으로 몇 장은 더 모아야겠다"는 시인의 수건, 그 깨끗한 수건이 되어 "순한 향내"를 내고 싶은 욕심. 그리하면 "까마중 열매"('동안에')라도 될 수 있을까.

네 얼굴의 먹구름 흘러가기를
순하게 기다리는 동안에

네 얼굴이 말갛게 드러나기를
천천히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것이 지나갔을 것이다
때를 놓친 것은 아니다

지나갈 것들 지나갔을 뿐이다
잡아뒀으면 까마중 열매라도 됐을까

네 참얼굴을 기다리는 동안엔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 '동안에' 전문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한영옥 지음. 문학동네 펴냄. 124쪽/8000원.

[시인의 집]그리하면 '까마중 열매'라도 될 수 있을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