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방송의 커머스화

머니투데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미래법정책연구소 대표) 2018.11.15 05:26
글자크기
[MT 시평]방송의 커머스화


지난 9월 모 방송사가 마스크팩이라는 상품을 소재로 디지털드라마를 제작하고 주연배우가 TV홈쇼핑에 출연해 이를 판매까지 했다. 또한 일부 종합편성방송사는 특정 프로그램에서 방송되는 내용과 관련된 상품을 해당 프로그램 방송 전후에 TV홈쇼핑에서 판매하는 홈쇼핑 연계 편성을 하고 있다. 공영방송인 지상파방송사는 드라마 혹은 예능프로그램 한 회분을 1, 2부로 나눠 그 사이에 삽입하는 유사 중간광고를 시행하더니 최근 정부로부터 중간광고 허용이라는 실리를 챙겼다.
 
이렇게 방송영역에서 경제적 행위의 가치가 비상업적 가치로서 저널리즘에 우선하면서 수익 극대화와 같은 경제적 목표가 중요시되는 경향을 일컬어 방송의 커머스화라고 한다. 이에 따라 방송 시청자는 이제 소비자로서 지위도 부여받는다. 원칙적으로 방송사도 기업인 이상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광고나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방송수신료와 더불어 방송사의 주요 재원인데,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면 여기에 많은 광고가 붙는 형식의 선순환은 바람직하다. 또한 기왕의 시청자를 기반으로 방송콘텐츠와 관련 시청자가 선호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도 시청자 효용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지나친 방송의 커머스화는 방송 시청의 흐름을 방해하는 등 시청권을 침해할 수 있다. 현행 방송법도 방송광고와 방송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않게 명확히 구분하도록 해 시청권을 보호한다. 특히 사회적 소통수단으로 민주적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공영방송의 경우 권력뿐 아니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도 필수라는 점에서 공영방송의 커머스화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에서 방송의 커머스화는 방송수신료의 저가구조에 대응한 고육지책이라는 특성이 있다. 다시 말해 비현실적으로 낮은 방송수신료를 대신해 다양한 커머스화 수단이 도입되는 것이다. 예컨대 국내 유료방송의 가입자당 수신료 평균수익은 미국의 10분의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더욱이 점점 수신료보다 광고나 홈쇼핑 송출수수료 의존도가 증가한다.
 
결국 과도한 방송의 커머스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방송수신료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광고 등의 의존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방송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방송플랫폼이 채널 수와 티어 운영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해 상품의 차별성·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유료방송사업자 간 인수·합병 촉진이나 시장점유율 규제완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의 지불능력 향상은 콘텐츠사업자의 재원확충으로 이어지고 콘텐츠사업자의 고품질 프로그램은 다시 가입자 확충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엄청난 수의 미디어 가입자와 매력적인 미디어 콘텐츠를 감안하면 미디어와 커머스가 융합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한류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국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처럼 콘텐츠의 커머스화는 중요한 산업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방송의 지나친 커머스화 경향이 시청자를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것은 물론 이런 경향이 과당경쟁과 광고 등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수익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