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으로 시작했다가 회의감으로 숨죽인 뒤 다시 의욕을 불태우는 ‘장난 아닌 장난’이 펼쳐진 상황이랄까.
문재인 정부 들어 블랙리스트는 새 정부 개혁 과제 1호였다. 도 장관 역시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스스로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돼 시작부터 의욕이 넘쳤다.
문체부는 당시 이에 대한 ‘해명’으로 형평성과 사생활 보호를 내세웠다. 문체부 관계자는 “여러 번 회의를 거쳐 실행 가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며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대상자 간 형평성을 감안해 최종적으로 우리(문체부)가 결정했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 비판에 대해서도 “예술계에선 미흡하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내린 결론”이라며 “다시 한 번 사과드리고 예술가 권리보장법 등 제도화를 통해 이런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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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는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2개월도 안 돼 문체부는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예술계가 재검토 의견을 계속 제기하자, ‘방안 논의’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번 재조사에선 5~7명 선에서 징계자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문체부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징계 0'에서 '징계 5'로 결론이 나온다 해도, 또 다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계 요구에 못 이겨 자신이 내린 결론에 위배 되는 '억지 징계'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기 때문. 징계자가 더 나올 수 있는데도 5명으로 줄였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판은 또 어떤가. '공정 처벌'로 시작해 '제 식구 감싸기'를 거쳐 '희생양 만들기' 같은 3단계 논법도 우스갯소리처럼 회자한다.
대체 지난 1년간 진상조사위는 무엇을 한 것일까. 피 터지게 논의만 하다 원점 수준에서 결론을 내고, 그 결론도 압박에 따라 다시 뒤집는 오락가락 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일을 ‘창조’한 것일까. 예술계가 1인 시위와 거리 행진을 이어가지 않았다면 문체부는 ‘징계 0’ 성적표를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했을까.
문체부가 새 정부 들어 가장 공들인 일은 ‘블랙리스트’ 척결과 ‘예술인’ 복지였다. 관광이나 콘텐츠 경쟁력이라는 지난 정부의 어둡지만 일관적으로 밀어붙인 ‘문화 성장’보다 더 큰 가치로 여긴 의욕의 창구가 블랙리스트 청산을 통한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1년간 걸어온 ‘블랙리스트’의 현주소는 ‘싱거운 재검토’일 뿐이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대체 무엇을 했는가 하는 비판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문체부는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또 ‘논의’를 한다고 한다. 이미 민간위원인 예술인들과 재검토 형식을 논의하기로 했고,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과도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만 하다 논란만 키울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