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탄력근무제 반대 공동행보, 속내는…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2018.11.09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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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한국노총, 9일 공동대응방안 논의…"또 밀리면 주도권 완전히 뺏겨" 위기감

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탄력근로제 기간확대 등 노동법 개악저지와 ILO핵심협약 비준 및 8대입법과제 요구 기자회견’에서 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노동법 개악 중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탄력근로제 기간확대 등 노동법 개악저지와 ILO핵심협약 비준 및 8대입법과제 요구 기자회견’에서 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노동법 개악 중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대 노총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을 확대하려는 정부에 맞서 손을 잡는다.

한국노총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9일 오후 4시30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을 방문해 김명환 위원장과 탄력근로제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광주형 일자리를 놓고 서로 각을 세우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문제에서는 긴밀히 협력하는 모양새다. 탄력근로제 확대 수용 여부가 향후 대정부, 대국회, 사측과 협상 등에서 그만큼 분수령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이 쉽게 통과되면 앞으로 최저임금법 재개정, 국민연금법 개정, 비정규직 문제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할 때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노동계의 위기감은 전날 오전 열린 민주노총의 기자회견장에서 잘 드러났다. 지도부는 야당은 물론 정부와 여당이 함께 탄력근로제 확대안을 밀어붙이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공약이 표류하다 못해 실종됐다"며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여권을 성토했다.

물론 직접적 반대 이유는 노동시간과 강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다. 곽형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여름 전후 5개월 동안을 60시간, 70시간 넘게 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령 현재 논의 중인 방안대로 6개월 단위로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면 비수기 때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에어컨 업무가 몰리는 여름철에는 살인적 노동강도에 시달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임금삭감 문제도 주요 이유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늘어나면 초과근무수당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예컨대 특정 사업장에서 3개월간 일이 몰리고 3개월간 한가하다고 가정하면 현행 제도 내에서는 적어도 3개월 간은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가 6개월로 늘어나면 한가한 3개월의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 평균 노동시간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초과근무수당도 적게 책정되거나 못 받게 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친 노동 정책을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계의 입지가 흔들리는 점이 강력 반발의 배경이란 분석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계가 방어 전선을 치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건 당장 실익이 있다기보다 정부와 노동정책을 놓고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 여론과 대내외 경제환경이 좋지 않은 점도 불안요소다. 각종 경제지표가 내리막을 걸으면서 정부도 친 노동정책을 마냥 펼 수 없는 처지다. 소위 고용 세습 논란 등으로 노조를 향한 국민의 시선도 한층 싸늘해졌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달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노조라고 해서 과거처럼 약자일 수는 없다"며 "민주노총이 상당한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말한 건 이 같은 상황을 반영했다.

우호세력을 잃고 있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강경 투쟁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5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된데 이어 이번 탄력근로제까지 확대되면 앞으로 정부나 사측과 협상에서 힘을 내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지금 이렇게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올해 5월 복리후생 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반발해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결국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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