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아침에 디자인, 오후에 시제품' 中 선전이 뜨는 이유

머니투데이 선전(중국)=진상현 특파원 2018.10.24 16:21
글자크기

개혁 개방 40년, 산업생태계로 본 선전의 경쟁력…부품부터 스타트업, 완성품 제조, 리딩기업까지 촘촘

"아침에 디자인을 하고, 오후에 공장에 가서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디자인, 상품개발, 마케팅, 부품 조달, 조립 생산까지 굉장히 빠른 시간이 이뤄진다는 점이 선전이 가진 최대 강점입니다"

지난 2006년 선전에서 창업해 세계 최대 드론업체로 성장한 DJI 관계자가 전한 선전 경제의 경쟁력이다. 40년 중국 개혁 개방의 상징으로 세계의 제조기지에서 글로벌 창업 기지로 거듭난 선전의 저력은 이상적으로 구축된 산업 생태계에 있다.



기존의 부품 생산 인프라에 토종 완성품 업체들이 성장했고,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태동하고 있다. 화웨이, 텐센트, 핑안보험 등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기업들은 든든한 맏형으로 선전 경제를 뒷받친다.
중국 선전에 위치한 휴대폰 부품업체 루이성커지의 한 관계자가 생산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중국 선전에 위치한 휴대폰 부품업체 루이성커지의 한 관계자가 생산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탄탄한 부품기업들, 선전 경제 숨은 동력= 텐센트 화웨이 등 선전을 대표하는 내노라하는 기업이 많지만 오늘의 선전 경제를 이끈 핵심 인프라는 부품업체들이다. 선전을 비롯, 인근의 광저우, 주하이, 둥관 등에 밀집된 부품업체들이 공급하는 주요 부품들이 스타트업, 완성품 업체들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지난 17일 방문한 루이성커지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스피커, 리시버 등 음향 부품과 햅틱(촉각과 힘, 운동감 등을 느끼게 하는 기술) 부품 분야 세계 1위 업체다. 1993년 설립돼 90년대 후반 모토로라, 노키아 등에 납품하는 등 내공을 쌓았고 선전 본사를 둔 화웨이, ZTE, 오포, 비보 등 중국 토종 기업들이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면서 급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211억 위안(약 3조4400억원), 순이익은 53억 위안(약 8700억원)에 이른다. 주목할 부분은 R&D(연구개발) 투자다. 중국을 비롯, 한국 일본 싱가포르 덴마크 미국 핀란드 등 6개 국가에 14곳의 R&D 기지를 두고 4000명이 넘는 R&D 인력을 운영한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규모도 7~8%에 달한다. 원젠웨이 루이성 홍보담당 임원은 "창업 30주년이 되는 2023년까지 스마트폰의 두뇌와 외장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DJI의 한 직원이 손으로 드론을 조종해 보이고 있다./사진= 진상현 베이징 특파원DJI의 한 직원이 손으로 드론을 조종해 보이고 있다./사진= 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BYD, DJI, 오포, 비포…토종 완성품 업체 급성장= 중국 최대 전기자동차 업체 BYD, 세계 최대 드론업체인 DJI, 떠오르는 휴대폰 기업 오포와 비보 등의 공통점은 모두 선전에 본사 둔 기업이라는 점이다. 부품 공급 등 선전의 제조 인프라를 통해 급성장했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부품 수요가 늘어나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이 다시 높아지는 선순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세계에서 전자 제품 트랜드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다는 화창베이 전자상가가 선전에 있는 점도 소비자 수요를 읽어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세계 드론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DJI의 경우 모든 제조 공장을 선전에 두고 있다. 석지현 DJI 시니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굉장히 빠른 시간에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 선전의 강점"이라며 "정부의 지원, 적은 규제 등을 선전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핀테크 기업 페이다이의 쩡쉬후이 창업자 겸 회장./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중국의 핀테크 기업 페이다이의 쩡쉬후이 창업자 겸 회장./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쏟아지는 스타트업…상업법인 하루 1512곳 신설= 선전의 창업 열기는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해 선전에서 상업 등기를 한 법인만 55만2000곳. 하루 평균 1512곳의 새로운 법인이 생겨났다. 누적 수치로는 309만4000곳으로, 시민 1000명당 상업 법인이 261곳, 기업은 151곳에 달한다. 중국 내 단연 1위다. 제조 인프라가 탁월한 선전은 하드웨어에 기반한 스타트업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젊은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핀테크도 그중 하나다.

지난 18일 방문한 페이다이는 안면인식 기능을 활용한 모바일 대출로 주목받고 있다. 3분 내, 최대 30만 위안(약 489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빅데이타를 활용해 은행에서 하는 복잡한 리스크 관리 절차를 간소화했다. 전체 직원 400명 중 IT 기술인력이 170명이다. 쩡쉬후이 페이다이 창업자 겸 회장은 "우리는 대출 업체가 아니라 핀테크 기업"이라며 "인터넷과 빅데이터 기반의 심사 기술을 기존 금융권에 이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텐센트 신사옥 22~23층에 위치한 내 실내 농구장/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텐센트 신사옥 22~23층에 위치한 내 실내 농구장/사진=진상현 베이징 특파원.
◇랜드마크, 최첨단 사옥…기업·도시문화 만드는 리딩기업들= 텐센트와 화웨이, 핑안보험 등 이미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선전의 리딩기업들은 선전 경제의 또다른 축이다. 대규모 투자는 물론 기업 문화, 도시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 19일 낮 선전시 난산구에 위치한 텐센트 신사옥.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IT 기술을 대거 접목해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인 최첨단 건물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곳은 50층과 39층, 두 개 동으로 이뤄졌다. 건물의 22층에 들어서자 탁 트인 공간이 나온다. 운동과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24층까지 3개층을 할애했다. 2개층을 뚫어 만든 농구 코트와 두 개 동을 관통해 이어지는 280m 거리의 조깅 트랙, 실내 암벽 등반 시설, 헬스장, 탁구장, 배드민턴장 등 다양한 체육 시설이 망라돼 있다. 낮시간이었지만 농구, 탁구, 헬스를 즐기는 직원들이 적잖았다. 텐센트 관계자는 "유연근무를 하고 있어 원할 때는 언제나 이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면서 "신사옥으로 옮긴 뒤 직원들의 자부심이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매출 기준 중국 내 최대 민영 금융그룹이자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29위인 핑안보험은 지난 2016년 선전의 랜드마크가 된 핑안국제금융센터를 완공했다. 118층 600m 높이로 중국 내 2위, 세계 4위의 마천루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