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현장] ②'어린이·실업자들에게 저녁 식사를' 스코틀랜드 셀틱의 창립 목적

스타뉴스 글래스고(스코틀랜드)=박수진 기자 2018.10.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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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셀틱 파운데이션 토니 해밀턴 총괄(오른쪽). /사진=셀틱 파운데이션 제공기성용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셀틱 파운데이션 토니 해밀턴 총괄(오른쪽). /사진=셀틱 파운데이션 제공


한국 프로스포츠, 나눔 활동의 나아갈 방향

마케팅의 대부이자 세계적인 기업 컨설턴트로 명망이 높은 미국의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87) 미국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인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를 통해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일류 기업들은 모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했다"며 "이를 올바로 수행하지 않는 기업은 더 이상 성장은 물론 생존조차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프로 스포츠 구단과 선수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필요성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구단들이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이런 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프로 스포츠 구단과 선수의 사회 공헌 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하면 더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됐다.



프로 스포츠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국내 구단들도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외 명문 구단들과 비교하면 아직 질적, 양적 측면에서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스타뉴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스포츠 선진국들과 국내 구단의 사회 공헌 활동을 현장 취재해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나눔 활동의 나아갈 방향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축구 중심' 독일·영국 구단, 사회 공헌도 '톱 클래스'
②'어린이·실업자에게 저녁 한 끼를' 스코틀랜드 셀틱의 창립 목적



셀틱 파크. /사진=박수진 기자셀틱 파크. /사진=박수진 기자
구단 설립 목적 자체가 '사회 공헌'

독일과 영국을 거쳐 도착한 곳은 기성용(29·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전 소속팀인 스코틀랜드 셀틱이었다. 셀틱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기성용이 몸담았던 팀으로 차두리(38·현 은퇴) 역시 기성용과 함께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뛰었다. 당시 기성용은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명문 구단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셀틱에서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며 현재의 기성용으로 발돋움하는 데 발판을 만들어준 구단이기에 한국 팬들에게 친숙하다.

셀틱의 연고지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다. 런던에서 열차를 타고 약 5시간 30분을 걸려 도착한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최대의 도시다웠다. 영국 전체를 통틀어 런던, 버밍엄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스코틀랜드의 수도는 에딘버러이지만, 인구(약 62만 명)와 면적에서는 글래스고가 1위다.


글래스고 중앙역에서 셀틱 구단의 홈 구장인 셀틱 파크까지는 택시로 약 15분이 걸렸다. 택시 운전사가 기자를 보고 기성용의 나라 한국에서 왔는지, 나카무라 슌스케(40·주빌로 이와타)의 나라 일본에서 왔는지 물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드필더 나카무라 역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셀틱에서 뛰었기 때문에 혼동할 만도 했다. 나카무라는 날카로운 프리킥이 일품인 선수였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환상적인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택시 기사는 "기성용이 요즘 뉴캐슬에서 잘 하는지 궁금하다"며 "셀틱에서 뛸 때 현재 셀틱 주장 스콧 브라운과 함께 미드필더에서 정말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더 좋은 무대로 가서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

셀틱 파크에 도착하자 셀틱 파운데이션의 총괄을 담당하는 토니 해밀턴이 기자를 직접 반겼다. 해밀턴의 명함에는 '우리 구단은 어린이들과 실업자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셀틱의 창립 기반인 셈이다.

토니 해밀턴 총괄의 명함에 적힌 문구. /사진=박수진 기자토니 해밀턴 총괄의 명함에 적힌 문구. /사진=박수진 기자
이런 문구처럼 셀틱 구단은 애초에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태어난 클럽이다. 1887년 설립된 셀틱은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기근을 피하기 위해 글래스고로 이주한 켈트(Celt)족들이 창립했다. 켈트족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쉬운 구단 명을 고민하다 결국 발음하기 쉬운 '셀틱(Celtic)'으로 지었다.

해밀턴 총괄은 "당시 글래스고로 이주한 켈트족들은 사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초기에 많이 환영받지 못했다"며 "주로 리버풀 외곽과 글래스고 외곽에 머물렀는데, 축구단을 통해 켈트족들은 이런 기근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 결과 셀틱은 아주 빠르게 세계적인 축구 클럽으로 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셀틱은 1966-1967시즌 영국 구단 중 최초로 현재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안컵을 제패했다. 현재 챔피언스리그의 '빅이어' 트로피는 셀틱이 우승하던 시절부터 사용돼 의미를 더한다. 1890년 스코틀랜드 프로 축구가 시작한 이래 셀틱의 통산 우승 횟수는 49회다. 54회 우승의 레인저스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이미 글래스고에 터를 두고 있던 레인저스와는 세계 최대의 '올드펌 더비'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소 옅어졌지만 셀틱(가톨릭)과 레인저스(개신교) 사이에서 종교 전쟁의 색깔을 띠기도 했다. 양 팀의 맞대결에는 많은 축구 팬들이 관심을 가진다.

EPL보다 광범위하고 통큰 규모

해밀턴 총괄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셀틱 구단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현재 최고 리그라고 평가받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들의 파운데이션과 결정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 묻자 해밀턴 총괄은 "우리는 경쟁적으로 파운데이션을 운영하지 않는다"면서도 "물론 EPL에 있는 구단들 모두 파운데이션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구단은 유럽 전체에서 보면 파운데이션 규모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규모가 가장 큰 차이 같다"고 말했다.

셀틱은 팬들을 대상으로 기부 뱃지를 판매하며 기금을 모으고 있다. /사진=셀틱 파운데이션 제공셀틱은 팬들을 대상으로 기부 뱃지를 판매하며 기금을 모으고 있다. /사진=셀틱 파운데이션 제공
실제 2017년 셀틱 파운데이션은 570만 파운드(약 84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EPL 토트넘이 1년 평균 100만 파운드(약 15억원)의 금액을 지출하는 데 비해 규모가 훨씬 컸다. 더욱이 이는 순전히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스코틀랜드 리그 사무국의 도움 없이 모은 금액이다. 리그 사무국의 지원이 있는 EPL과 대조적인 방식이다.

해밀턴 총괄은 "우리 구단은 최소 1년에 한 번씩 규모가 큰 미국 뉴욕 등에서 자선 경기를 치른다"며 "자선 경기가 열리는 우리 구단의 모든 인력이 총투입돼 파운데이션을 지원하곤 한다. 레전드 선수들이 많이 참여해 규모가 다소 크다"고 덧붙였다.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위)과 다운 증후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사진=셀틱 파운데이션 제공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위)과 다운 증후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사진=셀틱 파운데이션 제공
이런 자금력을 바탕으로 셀틱은 크고 다양한 행보를 보인다. 우선, 글래스고와 아일랜드 더블린의 치매로 고통받고 있는 노인들과 자폐증·다운증후군을 보이는 어린이들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여기에 영국 전역에 있는 13세부터 19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예술 분야의 취업 지원 프로그램까지 개최한다. 지난 2017년엔 500명의 청소년들이 셀틱의 혜택을 봤다. 또 16세부터 24세까지 범죄 이력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까지 직접 모아 재취업 프로그램의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셀틱은 스페인 FC바르셀로나, 독일 샬케04, 프랑스 AS모나코 등과 함께 E-스포츠 리그에 참가할 팀도 창단했다. 농구, 배구 등 다른 종목팀은 전혀 운영하지 않았었는데, 하나둘씩 세계적인 축구 팀들이 E-스포츠팀을 만들자 셀틱 역시 흐름에 합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모든 것이 셀틱의 '캐쉬백(Cash Back)'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쉽게 말해 현금을 사회에 돌려주자는 의미다.

해밀턴 총괄은 "우리 구단의 목표는 사람들의 건강과 함께 평등, 재교육, 가난 탈피다. 클럽에서 이런 활동들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며 "더 나아가 아프리카 말라위, 잠비아에 67개의 학교를 설립해 매일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하루에 4만명에서 5만명의 아프리카 어린이가 우리 구단의 혜택을 받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아시아 태국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실행될 예정"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최근 셀틱 파운데이션이 말라위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 /사진=셀틱 파운데이션최근 셀틱 파운데이션이 말라위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 /사진=셀틱 파운데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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