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로 낳은 딸과 살고 싶은데, 이혼할 수 있을까요?"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 2018.10.0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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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편집자주 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외도로 낳은 딸과 살고 싶은데, 이혼할 수 있을까요?"


Q) 저는 올해 나이 예순 다섯, 인생 후반기를 시작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사업을 계속해서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앞으로 오래 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 후반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제 마음에 걸리는 건 올해 아홉 살인 어린 딸입니다.

예순 다섯의 나이에 웬 아홉 살 짜리 딸이냐 싶으시겠지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이 엄마는 집사람 말고 다른 사람입니다. 10여 년 전 아이 엄마를 사업상 만나서 알고 지내다가 어쩌다보니 가까워져서 아이를 갖게 됐습니다.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를 두고 저와 아이 엄마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이 엄마가 낳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때 아이 엄마의 나이가 마흔이었거든요. 이번에 아이를 안 낳으면 평생 아이를 못 낳을 것 같다는 말에 끝까지 말리지 못했습니다.



저한테는 집사람이 낳은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이 아이들은 둘 다 서른이 넘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학창 시절에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고 결혼해서 거기서 살고 있고요. 그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사실 자식이 소중한지를 몰랐었습니다. 그 때는 새로 사업을 시작해서 자리를 잡기 전이라 제 신경은 온통 사업에만 가있었거든요.

집사람과 사이가 좋지 못하기도 했고요. 집 사람은 성격이 강하고 잔소리가 심한 편이라 결혼 초기부터 자주 싸웠기 때문에 저는 집에 있는 시간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일을 핑계삼아 집 밖으로 돌았고 가족과 같이 지내는 시간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집 사람이 알아서 키웠지요. 사업이 안정돼 한숨 돌릴 때쯤 되니 아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내 자식이긴 하지만 남같은 사이가 되어버리더라고요.



그렇게 살아온 저한테 뒤늦게 딸이 생기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자식이 이렇게 귀여운지를 처음 알게 됐지요. 이렇게 소중한 아이를 떳떳하게 세상에 나오게 하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했습니다.

몇 년 전 집사람이 알게 되어 그 때부터 집사람한테 많이 들볶였습니다. 자다가 느닷없이 맞은 적도 부지기수고 집사람이 아이 엄마 사는 집에 쫓아가서 난리를 친 적도 몇 번 있습니다. 제 잘못이 크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집사람이 절 보기만 하면 저주와 악담을 퍼부으니 자연히 전보다 더 집사람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람도 오래 전부터 제 식사나 빨래를 챙기지 않고 있고요. 그러다보니 같은 집에 살고는 있지만 거의 마주치는 일이 없이 지내게 되었고, 몇 달 전에는 도저히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집을 나와서 회사 근처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이혼하는 게 낫겠다 싶었지만 집사람은 ‘누구 좋으라고 이혼해주냐?’고 하면서 절대 이혼 안해주고 평생 저에게 복수하겠다 합니다. 집사람의 심정도 이해가 가기 때문에 집사람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집사람과 아빠에게 실망한 두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앞으로도 집사람과의 사이가 좋아지는 건 불가능하고 어찌 됐건 두 자식들은 다 커서 독립했으니 이제는 저의 도움이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어린 딸이고, 아빠로서 이 어린 아이를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생아로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집 사람과 두 자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까지 남편과 아빠로서의 의무는 어느 정도 했으니 제 남은 생애는 어린 딸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의 성격과 지금까지의 태도로 봐서 순순히 이혼에 응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집사람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한다면 이혼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집사람이 이혼만 해준다면 재산의 80%를 주고 제가 돈을 벌고 있는 동안은 집사람의 생활비도 대줄 생각입니다.


A) 가끔 선생님과 같은 고민을 가지고 찾아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세간의 눈으로 보면 조강지처 놔두고 바람피워 자식을 낳은 뻔뻔스러운 사람으로 치부해버리기 쉬운 경우지요. 하지만 저는 선생님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이런 분들의 고민과 고통이 깊다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제가 만나본 분들은 원래의 가족과 새로운 아이 양쪽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계셨습니다. 어떤 분은 양쪽 모두에게 너무 미안해서 늘 죽고 싶은 마음으로 지내왔다고 했습니다.

아마 선생님도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워 오랜 시간 망설이다 어린 딸의 장래를 위해서 이혼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법적인 아내에 대한 정절이냐, 어린 아이의 미래냐, 누구라도 고민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데, 그건 법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의 외도로 아이를 낳았으니 선생님은 소위 ‘유책(有責)배우자’에 해당하는데, 우리 법원은 전통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상대방 배우자가 오기나 보복적인 감정에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가 아니면 안 받아준다는 입장을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오기나 보복적인 감정에서 이혼을 거부한다는 점을 재판과정에서 증명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법원의 이런 원칙이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요즘 시대에 안 맞는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줘야 하느냐를 놓고 법원은 상당히 고민을 하다가 2015년에 입장을 정리한 판결을 내놨습니다.

그 판결에 의하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기각하는 게 원칙이지만, 세 가지 예외가 있다고 합니다. 원문 표현은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단순화시키면 △ 상대방 배우자도 이혼을 원하거나 △ 파탄 후 배우자와 자녀들 부양을 소홀히 하지 않았거나 △ 파탄 후 오랜 세월이 흘러 파탄의 고통이 다 잊혀진 경우 등에는 이혼판결을 해준다는 겁니다. 이 판결을 보면 법원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결혼의 의무를 선택한 걸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생님은 선생님의 아내가 오기나 보복적인 감정에서 이혼을 거부한다는 점이나 2015년 판결에서 얘기한 세 가지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이혼판결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두 가지 중 어느 쪽도 만만치 않으니, 법원이 이혼판결을 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언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혼사건의 경우 통상 판결까지 가는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판결 전에 가정법원이 중재를 해서 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조정으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조정과정에서 가정법원은 판례에서 나타나는 공식적인 입장보다는 훨씬 융통성 있는 결론을 내려보려고 노력합니다. 선생님의 경우 어린 딸의 장래를 위해서 이혼을 원하고 재산분할을 대폭 양보하며 이혼 후에도 아내의 생활비를 주겠다고 한다면 가정법원이 일단 선생님의 아내를 설득해볼 것입니다. 경험상 보면 당사자들간의 대화보다는 가정법원의 설득이 훨씬 효과적이긴 합니다.

그러니 일단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혼 후의 생활대책이 보장된다면 선생님 아내의 입장에서도 분노와 배신감에 시달리면서 사는 현재보다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정을 내리시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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