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본 마르딘 구시가지.
마르딘에서 시작하는 첫 아침. 다른 도시를 찾아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구시가지’를 찾아갔다. 어느 도시든 오래된 시가지는 있게 마련이고, 그곳에 가면 마치 보물창고를 뒤지는 것처럼 다양한 시간의 자취들을 만나게 된다. 마르딘의 구시가지는 해발 1,000m의 산기슭을 따라 세워진 집단 주거지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으로 물러나서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을 바라본다. 엄청나게 큰 산 하나가 통째로 사람들에게 거처를 내줬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맨 꼭대기에는 성채가 우뚝 서 있다. 전형적인 방어형 주거지. 산 아래로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펼쳐져 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봐도 푸른 초원만 눈에 찰 뿐이다.
끝없이 펼쳐진 메소포타미아 평원.
당나귀 청소원.
1960년경 마르딘 전체를 문화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도시 안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골목은 가파르고 좁아서 차가 들어갈 수가 없다. ‘압바라’라고 부르는 석조 건축물들이 골목과 골목을 미로처럼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소를 안 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동원된 것이 당나귀다. 약 40마리의 당나귀가 청소에 동원되는데 이들은 시청에 소속돼 있는 ‘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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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뒤를 따라 골목 탐색에 나섰다. 집들은 요새처럼 높게 담을 쌓았고 골목은 사람 한두 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좁다. 집들을 이렇게 높고 튼튼하게 지은 것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 도시 전체를 요새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골목도 가능한 한 좁게 만들었다. 어떤 세력도 영원히 이 도시를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격을 하던 쪽이 방어하는 쪽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는 일도 빈번했을 것이다. 집은 아랍풍의 건축물들이 많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 이곳을 누가 차지했든 이제는 그저 이야기로 남아 떠돌아다닐 뿐이다. 여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 덕분에 아름답고 튼튼하고 은밀한 골목길을 걸어볼 수 있다는 것.
여기저기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또 다른 당나귀 청소원을 만났다. 이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뭔가 보여주지 못해서 안달이다. 우선 당나귀의 재주를 선보인다. 아저씨가 멀리 떨어져서 “서!” 하면 신통하게도 바로 선다. 물론 “가!” 한마디가 떨어지면 뚜벅뚜벅 걸어간다. 거참, 말 안 듣는 사람보다 훨씬 낫네. 내가 재미있어하자 아저씨는 신이 나서 계속 “서”와 “가”를 반복한다. 아저씨와 당나귀가 골목으로 사라지자마자 이번엔 행상을 하는 당나귀가 나타난다. 커다란 자루에 각종 채소를 담아서 팔러 다닌다. 자루를 들여다보니 감자, 파, 시금치 등 온갖 채소가 들어있다. 우리로 치면 트럭행상인 셈이다.
골목 끝에는 쓰레기 집하장과 당나귀들의 집이 있다. 쓰레기를 내려놓은 당나귀들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쉬고 있다. 그런데 건물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이런! 역시 문화재급 건축물이다. 하긴 서 있는 모든 것들이 ‘고대’ 두 글자와 멀지 않으니 당나귀 집 아니라 무엇으론들 못 쓰랴. 청소원들은 여기서 퇴근을 한다. 아침 일찍 나와 청소를 하고 열시에 퇴근한 뒤 오후에 다시 나온단다.
성채처럼 높고 튼튼하게 지은 마르딘 구시가지의 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