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소리를 껐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8.09.15 06:10
글자크기

'귀덮개+귀마개' 3일, 청각장애인 헤아려보니…침묵만 오간 긴 하루, "같이 웃고 싶었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수동 휠체어를 직접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하고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고 다니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귀마개와 귀덮개를 한 기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오토바이 굉음이 작게 들리는 정도다. 대화 소리는 안 들린다. 걷는 포즈가 다소 어색하게 나왔다(두 팔이 동시에 앞으로 향하고 있음)./사진=남궁민 기자귀마개와 귀덮개를 한 기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오토바이 굉음이 작게 들리는 정도다. 대화 소리는 안 들린다. 걷는 포즈가 다소 어색하게 나왔다(두 팔이 동시에 앞으로 향하고 있음)./사진=남궁민 기자




세상의 모든 소리를 껐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만 남았다. 갑자기 세상이 '음소거' 된 듯 했다. 새벽에도 차마 몰랐던, 처음 느끼는 고요함이 낯설었다. 걷는 것도 어색하던 찰나, 행인 두 명이 재잘대며 옆을 스쳐갔다. 입 모양만 잔상에 남았다. 웃음 섞인 듯한 통화소리도 허공서 사라졌다. 귀가 찢어질듯 싫었던, 오토바이 굉음 정도만 귓가를 두드렸다. 눈으론 잘 알고, 귀로는 전혀 몰랐던 상황이 펼쳐졌다.

이는 누군가 매일 겪을 세상이었다. '청각 장애인'들이다. 국내 청각장애인 수는 30만2003명(지난해 기준)이다. 전 국민(5142만2507명, 지난해 기준) 대비 0.5% 정도다. 성별로는 남성(16만2319명)이 여성(13만9684명)보다 많고, 연령대는 75~79세(5만1614명)가, 사는 곳은 경기도(5만6322명)가 가장 많다.



잘 들리지 않는, 혹은 안 들리는 기분이 어떤지 잘 몰랐다. 주위에서 보기도 힘들었다. 장애인 문제를 많이 들여다봤지만, 우선 순위서 밀렸었다. '그래도 안 보이고 못 다니는 것보단 낫겠지' 막연히 여겼었다. 또 체험이 어렵기도 했다. 지체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시각 장애인은 눈을 감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는 건 불가능 해 보였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 쓰고픈 기사로만 남아 있었다.

다시 생각난 건 지난달 말쯤. 왼쪽 귀가 돌연 말썽을 부렸다. 솜을 넣은듯 먹먹하고 잘 안 들리고 말소리가 울려 들렸다. 병원에 가도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잠을 길게 한숨 푹 자고 쉬니 나아졌다. 피곤했나, 스트레스 때문인가 하고 말았다. 그 때 잘 안 들리는 괴로움을 절실히 느꼈다. 오래 잊고 있던 청각 장애인들 생각이 났다. '체헐리즘'을 해보기로 맘 먹었다. 한계가 있어도,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 믿었다. 그저 짐작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소리'를 막아봤다
소음 차단을 위해 사용한 귀덮개와 귀마개. 완전히 안 들리진 않았지만 대화 대부분이 들리지 않았다. 청각 장애인을 헤아리고 싶었다. 샤워할 때 외에는 모두 차고 있었다. 오래 사용하니 땀이 차고(약간의 냄새) 귀에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사진=남형도 기자소음 차단을 위해 사용한 귀덮개와 귀마개. 완전히 안 들리진 않았지만 대화 대부분이 들리지 않았다. 청각 장애인을 헤아리고 싶었다. 샤워할 때 외에는 모두 차고 있었다. 오래 사용하니 땀이 차고(약간의 냄새) 귀에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소음 차단용 귀덮개(머리에 쓰는 형태)를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려고 보니 배송이 오래 걸렸다. 수소문 끝에 청음복지관서 빌리기로 했다. 11일 오전 바로 찾아갔다.


오현정 사회복지사(수어통역사, 직업지원팀 부장)가 사전 설명을 꼼꼼히 해줬다. 청각 장애인들도 각자 정도가 다르다 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잘 받고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이들도 있다. 반면 완전히 안 들리고 언어가 안되는 이들도 있다. 보통 입모양을 보고 하는 구어나 손으로 하는 수어를 써서 대화한다고 했다.

그리곤 두께가 묵직한 귀덮개를 건네줬다. 그러면서 오 부장은 "아마 본인도, 주위 사람들도 답답해서 하루도 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진 그 말 뜻을 잘 몰랐다. 못 보는 것도, 다닐 수 없는 것도 아니니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거라 여겼다. 대화는 스마트폰이나 업무용 메신저로 하자 생각했다. 목표는 3일(11~13일)이었다. 씻을 때를 제외하곤 모두 착용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11시10분, 청음복지관을 나서며 귀덮개를 처음 써봤다. 일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거리로 나와봤다. 작은 소리는 안 들리고, 큰 소리는 작게 들렸다. 지하철 분당선을 기다렸다. '덜컹덜컹'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탑승한 뒤엔 도착역 안내방송만 뚜렷히 들리고, 그 외 다른 안내방송은 잘 안 들렸다. 맞은편에 서서 통화하는 여성 목소리는 안 들렸다. 이따금씩 크게 떠드는 이들 언성이 들리는 정도였다.

소리를 더 차단하는 게 필요했다. 광화문 인근 문구점에 가서 귀마개(귀에 넣어 틀어 막는 형태)를 샀다. 귀마개로 귓구멍을 꽉 막은 뒤, 귀덮개로 귀 전체를 덮었다. 1차, 2차로 나눠 소음을 차단하는 거였다.

그렇게 하니 더 고요해졌다. 시끌벅적 지나가는 직장인들 말소리도, 서점서 책장 넘기는 소리도 안 들렸다. 모든 소리가 꺼진듯 했다. 가까이서 아주 크게 얘기해야 작게 들리는 정도였다. 아예 안 들렸으면 했지만, 이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준비가 된듯 했다.



가까이, 하지만 따로 있었다
출근길에 찍은 풍경. 소리가 사라지니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도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닿을듯 닿지 않는 기분이 뭔가 더 외로웠다. 시각과 촉각 등 다른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출근길에 찍은 풍경. 소리가 사라지니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도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닿을듯 닿지 않는 기분이 뭔가 더 외로웠다. 시각과 촉각 등 다른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청각 장애인들에게 가장 힘든 건 '안전 문제' 일줄 알았다. 소리가 경고 신호인데, 이를 못 들으니 위험한 일이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겪어보니 정말 괴로운 건 따로 있었다. '소통' 이었다.

회사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귀덮개를 한 모습이 낯선지, 부장과 팀원들이 일제히 웃었다. 뭔가 재밌는 얘기를 하는듯 웃음이 잇따라 터졌다. 하지만 입모양만 보일 뿐 안 들렸다. 그렇다고 표정을 굳히고 있자니 어색했다. 그냥 뭣 모르고 같이 미소 지었다.

말 한 마디를 내뱉었더니, 다들 또 웃었다. 영문을 몰라 쳐다봤다. 팀원 박가영 기자가 귀띔해줬다. '말씀할 때 목소리가 우렁차다, 사무실을 꽉 채우는 것 같다'고. 평상시처럼 얘기한 것 같은데 크다고 해 의아했다. 적응기가 필요한듯 했다. 다시 작게 얘기하며 '괜찮냐'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는 대면(對面) 대화가 단절됐다. 꼭 필요한 얘긴 메신저로 오갔다. 구어는 단기간에 배울 수 없었고, 수어는 부원들 중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익숙지 않은듯 까먹고 말을 걸다가, '됐다'며 메신저로 설명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마저 설명한 이들은 나은 편. 처음 만난 이들은 '뭐 하고 있느냐'며 알아 듣지 못할 말을 계속 건넸다. 회사서 마주친 본지 편집국장이 '그게 뭐냐'고 묻는 것 같길래, '청각장애 체험'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 말이 이어졌지만 듣지 못했다. 자리를 뜨는 것이 점차 불편해졌다.

회사 부장, 팀원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다소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주위에서 뭔가 대화를 나누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메신저로 물어봤다. 해야할 대화도 평소보다 더 안하게 됐다. /사진=남형도 기자회사 부장, 팀원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다소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주위에서 뭔가 대화를 나누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메신저로 물어봤다. 해야할 대화도 평소보다 더 안하게 됐다. /사진=남형도 기자
불과 몇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말수가 줄어갔다. 국민학교 때 교과서 이름이 왜 '말하기·듣기' 였는지 새삼 깨달았다. 두 개가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어렸을 땐 드라마 속 청각 장애인을 보다 엄마에게 물었던 게 생각났다. '듣지 못해도 말은 소리내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었다. 철없는 질문이었다. 제대로 듣질 못하니 말을 아끼게 됐다.

계속 메신저로 대화만 오가니 답답하게 느껴졌다. 의미는 통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맥락' 등 부차적 정보들이 차단됐다. 소통할 수록 목마른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더디게 갔다.

달라진 건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차 얼굴을 보고 말 거는 횟수가 줄어갔다. '어차피 못 알아 들을테니'라 생각하는 듯 했다. 퇴근 인사도 메신저로 나눴다. 아쉬운 기분이 들어 '가자'는 의미가 담긴 수어를 찾아봤다. 손을 허공에서, 안쪽에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모양이었다. 부장, 팀원들과 대면하고 인사를 나눴다. 꽉 막힌 기분이 풀리는 듯 했다.



좋아하는 드라마도 못 보고…'배려'가 부족한 것들
집에서 한 방송사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기자 뒷모습. 원래 집에 오면 뉴스를 잘 안 본다. 요리사가 집에 와 요리하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어 어쩔 수 없이 봤다. 연출샷을 찍은 뒤 채널을 돌렸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집에서 한 방송사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기자 뒷모습. 원래 집에 오면 뉴스를 잘 안 본다. 요리사가 집에 와 요리하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어 어쩔 수 없이 봤다. 연출샷을 찍은 뒤 채널을 돌렸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퇴근길, 여느 때처럼 발걸음을 재촉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오토바이에 치일 뻔 했다. '쌩' 하고 달려와 다리 바로 옆에서 멈췄다. 소리를 못 들었다. 평소 같으면 미리 반응했을 터. 소스라치게 놀랐다. 청각 장애인들이 긴급 상황에 대처 속도가 늦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주변 상황에 예민해졌다. 자꾸 두리번거리는 일이 반복됐다. 소음이 적은 자전거는 더 무서웠다. 뒤에서 조용히 나타나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깜짝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알아서 조심해야 했다.

긴급 상황에서 도울 방법이 필요해보였다. 오 사회복지사는 "클락션 등을 못 들으니 비장애인들 같으면 피할 수 있는 상황을 못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청각 장애인은 차량에 '클락션을 못 듣습니다'라고 써놓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119 호출 등 응급 상황에서도 문제다. 수어 통역사 등을 불러 신고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통해 전달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린다. 자기 경험을 말로 직접 전하지 못하니 완벽한 설명이 되기도 어렵다.

스마트폰은 진동 모드가 필수였다. 벨로 해놓으니 안 들렸다. 잠깐이라도 몸에서 떼면, 뒤늦게 확인하는 일이 잦았다. 연락이 올 때, '반짝' 하는 불빛 등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유튜브 영상 시청 도중 자막 서비스(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를 켜니 저렇게 나왔다. 우리나라 말은 맞는듯 했다. 해석 가능한 분은 기자에게 메일(human@mt.co.kr)을 주길 바란다./사진=남형도 기자유튜브 영상 시청 도중 자막 서비스(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를 켜니 저렇게 나왔다. 우리나라 말은 맞는듯 했다. 해석 가능한 분은 기자에게 메일([email protected])을 주길 바란다./사진=남형도 기자
집 앞에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습관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가까이 대봤지만 목소리가 안 들렸다. '아뿔싸'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에게 뭘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좀 답답할 거라고'고 했다. '고생 많다'며 응원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통상 청각 장애인들은 영상통화로 수어를 하거나, '손말이음센터(전화중계서비스)' 등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누군가를 거쳐야 한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된다고 했다. 수어는 공용언어가 됐지만, 실상은 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직접 소통하는 길은 쉽잖아 보였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시간. TV 설정에서 자막을 켰지만 나오지 않았다. 재차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자막 서비스가 없는 드라마였다. 결국 영상만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도무지 납득 안되는 상황은 아내에게 물어봤다. 그래도 답답했고, 대부분 이해가 안됐다.

추후 알고 보니 이처럼 자막이 안 나오는 TV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방송 3사 콘텐츠 등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자막이 안 떴다. 수어 영상이 같이 들어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TV 볼 때 '보고 싶은' 걸 보는 게 아니라, '볼 수 있는' 걸 찾기 위해 리모콘 돌리는 게 일이었다.

스마트폰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보려하니, 직접 자막을 제작해 넣은 일부 콘텐츠를 제외하곤 대부분 화면만 봐야 했다. 화면 하단에 '자막 서비스'란 버튼이 있어 눌러봤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자막이 떴다. 외계어 같았다. 그중 하나를 직접 옮겨보겠다. '만약에 상대가 다 없다고 어떻게 측면을 더 닭이 va 끈 노 담아 나에게.' 이게 과연 알아 들으라고 돼 있는 자막일까.



점심 팀 회식, 그래도 '소통'하니 좋아
12일 점심 팀 회식 도중 이재은 기자가 지금 어떤 대화를 하는지 스마트폰 노트에 써서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같이 대화할 수 있었다. 노트에 담긴 내용은 팩트가 아니라, 누군가의 개인적 생각임을 밝힌다./사진=남형도 기자12일 점심 팀 회식 도중 이재은 기자가 지금 어떤 대화를 하는지 스마트폰 노트에 써서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같이 대화할 수 있었다. 노트에 담긴 내용은 팩트가 아니라, 누군가의 개인적 생각임을 밝힌다./사진=남형도 기자
적막한 세상에 홀로 있는 것 같았다. 3일이 꽤 길었다. 가까이 닿을듯, 멀어서 닿지 않는, 그런 안타까움이 큰 시간들이었다.

긴 기사 마무리는 12일 팀 점심 회식 이야기로 할까 한다.

집중적으로 대화를 많이 하는 자리라 걱정이 됐었다. 그렇다고 귀덮개를 벗고 싶진 않았다. 취지가 퇴색될 것 같았다. 양해를 구하고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계속 썼다.

처음엔 알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갔고, 어쩔 수 없이 침묵했다. 입모양과 몸짓에 오감(五感)을 곤두세웠지만 쉽잖았다. 입모양은 생각보다 작았고, 몸짓은 정보가 부족했다. 갸우뚱 한 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같이 웃고 싶었다.

그러다 팀원 몇몇이 소통 방법을 찾아냈다. 이재은 기자는 스마트폰 노트장에 '부동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디 땅값이 올랐다고 한다'고 써줬다.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박가영 기자는 말하면 문장으로 바꿔주는 앱이 있다며 화면을 보여줬다. 과학 기술이 더 발전했으면 했다. 여기서 나누는 모든 대화를, 실시간 문장으로 바꿔 보여준다면 좋을 것 같았다.

앞에 앉아 있던 부장은 또박또박, 손짓을 더해가며 계속해 말을 걸었다. 집중해서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 더딜 순 있지만,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대화도 할 수 있었다.

못 알아 듣겠거니 하고 시선을 다른데로 향할 땐 소외됐다. 어떻게든 얼굴 마주하고 소통(疏通)을 하니 좋았다. 방법이 좀 다른 것 뿐이었다.



청각 장애인 "서로 이해했으면, 차별 없는 세상 되길"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2017년도 전국 시·도별 장애인 복지·교육 비교 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이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시스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2017년도 전국 시·도별 장애인 복지·교육 비교 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이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시스
14일 오전 귀덮개를 반납하러 다시 청음복지관을 찾았다. 그간 느낀 것들을 대학생 성지훈씨(24, 청각장애 2급)와 함께 얘기했다. 똘똘하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성씨는 그간 불편하게 느꼈던 것들을 털어놨다. "버스나 지하철서 안내방송이 음성으로 나올 때, 알아 듣기 불편하다"고 했다. 잠을 자고 싶어도 못 잔다고 한다. 정류장 안내 전광판이 고장나서 안 나올 땐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TV 프로그램 '수어 화면'은 좀 컸으면 좋겠다"고 했다. 빠르면 못 알아 듣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이기순 사회복지사가 "선진국은 TV 화면에서 '수어 화면'이 1대1로 큰 데도 있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성씨는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에도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래 가사를 따로 띄워놓고 영상을 같이 보는데, 불편하다 했다.

소통은 비장애인과는 '구어'가, 청각 장애인과는 '수어'가 편하다고 했다. '필담(筆談: 문자 언어로 대화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쓴다. 다만 "짧게 말하거나 입모양을 크게 안하면 알아 듣기 힘들다"고 말했다.

성씨는 "비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이 서로 입장이 다르니 서로 맞게끔 이해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조금이라도 장애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바람도 전했다.

청각 장애인들 모두가 못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편견'이다. 전혀 못 듣는 이도 있지만, 보청기·인공와우이식술 등 도움을 받아 어렵게 듣는 이들도 있다. 특히 요즘 세대들은 어렸을 때부터 구어·수어 등 교육을 잘 받아 의사 소통을 극복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일부는 사회 생활을 할 때 대화 맥락 등까지 파악하기 어려워 소외된다고 했다.

성씨와도 천천히, 조금 크게, 또박또박 얘기하니 소통이 잘됐다. 이따금씩 웃음 소리도 오갔다. 그는 이제 대학교 4학년이다. 사회로 나갔을 때쯤엔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랐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