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스토리]"4살 中企가 수천억 매출, 이거 실화?"

머니투데이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18.09.1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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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인재들 모여 전자가격표시기(ESL) 개발.. 신생업체가 글로벌 리딩기업으로 우뚝

김현학 라인어스 대표가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김현학 라인어스 대표가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00년대 초반 안테나가 사라진 휴대폰이 처음 등장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안테나가 없어진 게 아니라 내장된 것이다. '인테라'라고 부른다. 이 안테나를 휴대폰 속으로 넣은 주인공은 ICT(정보통신기술) 업체 '라인어스'를 이끄는 김현학 대표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이다.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드러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현학 대표와 '라인어스'에 비견할 만한 말이다.

신생 기업 라인어스는 '수천억 원'의 매출을 목전에 둔 업체다. 설립 4년차 중소기업에 수천억 원 매출이 가당키나 할까. 이 회사의 '제품'과 '사람', 그리고 '기술'을 들여다봤다.



◇제품

라인어스의 주력 제품은 IoT(사물인터넷) 기반의 전자가격표시기(ESL) '인포탭'이다. ESL은 마트의 '종이 가격표'(종이 쇼카드)를 대체하고 있는 디지털 제품이다.

종이 가격표는 일상에서 흔히 접한다. 마트 진열대엔 상품마다 이것이 붙어 있다. 대형마트 식료품 매장의 경우 1개 층에 종이 가격표가 4~5만개나 된다. 이 때문에 관리하는 데 애를 먹는다. 가격표를 출력한 후 케이스에 맞게 오린 다음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끼워 넣어야 한다. 전국 규모의 체인형 매장이라면 여기에 들어가는 인력과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유통사들이 ESL을 도입하는 까닭이다.


ESL 제조사의 매출 근거는 이렇다. 전국에서 200개 대형매장을 운영 중인 유통 업체를 수주했다고 치자. 1개 지점에 ESL 5만 개를 설치한다면, 전국 매장에 1000만개의 ESL을 까는 셈이다. 계산 편하게 개당 단가를 1만원으로 보자. '1000억원'이다. 라인어스의 수천억 원 매출이 가능한 이유다.

라인어스는 이탈리아 유통그룹 쿱(COOP)을 수주했다. 쿱의 매장은 이탈리아 내에서 540군데다. 1개 매장당 5만개의 '인포탭'이 들어간다. 현재 3개 매장에 15만개가량을 설치한 상태다. 김현학 라인어스 대표는 "2019년 6월부터 2020년 말까지 540개 매장에 모두 설치하기로 했다"면서 "납품 완료하면 실적이 4000억원 이상"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쿱 외에도 대형 수주가 이어지고 있다. 201개 지점을 운영 중인 유통 업체에서 50만개 오더(1차분)를 따냈다. 기타 유통사(62개 지점 보유)와 유기농 매장(320개 지점 보유) 등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의 경우 1만2000개 매장을 보유한 그룹의 본사에 '인포탭'을 설치 완료한 상태다. 400개 매장을 둔 러시아 전자 유통 업체와도 가격 협상 중이다. 프랑스에선 2만개 매장을 확보한 약국 체인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이제 국내 시장도 열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하나로마트, 현대백화점, 세븐일레븐, CU 등에 '인포탭'을 설치 중"이라며 "9월에는 잠실 롯대백화점에, 10월엔 롯데마트와 명동 신세계백화점 등에 설치한다"고 말했다. LG 베스트샵 400개 매장도 결정됐고 하이마트도 진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사람

라인어스의 '사람'은 내로라하는 인재들로 구성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현학 대표는 2001년 삼성전기 중앙연구소로 입사, 인테나 개발을 주도한 바 있다. 그는 삼성전기 엔지니어들과 함께 2014년 라인어스를 창업했다.

라인어스의 임창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삼성전자·삼성전기 임원 출신이다. 이은수 전무 역시 삼성전기에서 혁신센터를 15년 동안 이끌며 혁신과제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김 대표가 라인어스를 세우고 ESL을 만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2007년 삼성전기 시절, 사장에게 'ESL 개발'을 건의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부터 개발을 본격화했다.

그의 목표는 세상에 없는 ESL을 개발하는 것. 이를 위해 전 세계 4대륙을 돌아다녔다. ESL 설계자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하고 30만건의 특허를 분석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삼성 ESL'이다. 세계 최초로 2.4GHz(기가헤르츠)와 RF 방식을 쓰는 ESL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페이퍼(e-paper)까지 적용됐다.

당시만 해도 ESL은 '13.56kHz' 또는 '적외선' 방식이었다. 13.56kHz의 경우 중계기에서 ESL로 가격 정보를 보낼 수 있는 거리가 짧았다. 이 때문에 매장 천정 전체에 별도 시공을 해야 하는 일도 발생했다. ESL에 가격 정보를 보내는 속도 또한 더뎠다. 적외선 방식의 경우 직진성이라 ESL이 상품으로 가려져 있을 때 정보 수신이 불가능했다.

특히 기존엔 서버에서 ESL로 가격 정보를 보냈을 때 ESL이 해당 정보를 제대로 받았는지, 오류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수만 개의 ESL을 확인해야 했다.

이 같은 이유로 ESL은 '애물'이었다. 199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국내를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오류 탓에 종이 가격표와 병행하다 보니 비용이 더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삼성 ESL'이 나온 것이다. 2010년 첫선을 보인 곳은 영국 테스코였다. 테스코 본사 옆 런던 매장. 유럽에서 삼성 ESL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기술에 깜짝 놀랐다. 기존 단점들은 모두 해소됐고, 오류 또한 중앙 시스템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종이 가격표를 완벽히 대체할 ESL이 나온 셈이다. 이후 3년 만에 3800억원의 매출이 올라왔다.

하지만 삼성전기 내부에선 ESL 사업을 접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삼성전기의 비즈니스와 맞지 않아서다. 김 대표는 ESL을 놓을 수 없었다. 라인어스가 태동한 배경이다. 이후 삼성전기는 정리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기술

사례1) 글로벌 유통 업체 A는 본국에 500개 매장을, 해외 각 나라에 5000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 매장에 5만개의 ESL이 적용됐다. 이에 따라 A는 전 세계적으로 2억7500만 개의 ESL을 운영한다. A 본사는 전 세계에 깔려 있는 2억7500만 개 ESL로 가격 정보를 내리는 데 10분이면 된다. 나라가 달라도 본사 한곳에서 컨트롤한다.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사례2) '나장봄'씨는 오늘도 마트에 들어섰다. 카트도 끌지 않는다. 평소 즐겨 찾는 식료품 코너로 향했다. 상품들 앞에 설치된 ESL에 스마트폰을 슬쩍 갖다 댄다. 해당 상품들은 스마트폰 '장바구니'로 담기기 시작했다. 10여 가지 정도를 샀을까. 결제를 클릭함과 동시에 장보기를 끝낸다. 빈손으로 유유히 마트를 빠져나온다. 장 본 물건들은 집으로 배달될 예정이다.

사례3) '이편한'씨는 와인 코너에 들렀다. 신상품이 눈에 띈다. 스마트폰으로 ESL을 터치하니 와인의 상세 정보가 떴다. 확인 후 '장바구니'에 담는다. 즐겨 먹던 와인도 1~2병 사려고 했지만 쉽게 찾을 수 없다. 와인 종류가 워낙 많아서다. 옆에 놓인 키오스크로 원하는 상품을 검색해 클릭했다. 해당 와인의 ESL에서 LED(발광다이오드)가 켜졌다. 역시 스마트폰을 대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 사례들은 라인어스의 ESL '인포탭'(Infor Tab) 얘기다. 김 대표가 2014년 라인어스를 창업하고 1년 반 동안 다시 기술 개발에 몰두한 결과다. 기존 ESL은 가격 정보만 제공했다. 유통 업체의 니즈만을 충족하는 제품이었다. 반면 '인포탭'은 소비자에게도 편의를 제공하는 ESL이다. 쿠폰 제공, 상품 광고, 상품 추천 등도 가능하다.

김 대표는 이 같은 기술로 2016년 유럽 시장을 다시 공략했다. 예전 삼성전기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엔 삼성이란 브랜드였지만, 이젠 '라인어스'다. 글로벌 업계가 술렁였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ESL이 유럽 시장에 깔리고 있어서다.

"라인어스? ESL 업체 중에 그런 회사가 있어? 도대체 뭐하는 회사야? 알아봐."
"예전 한국의 삼성전기에서 ESL을 개발했던 그 사람입니다."
"아......"

'김현학'

글로벌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존재다. 그가 삼성전기 시절 개발한 '2.4GHz ESL 기술'이 세계 표준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 깔리는 모든 ESL은 김 대표가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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