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판한 ‘예능의 전설’…“대중의 냉정한 평가, 나의 교만에서 시작”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9.0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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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데뷔 20주년 맞아 ‘리슨콘서트’ 여는 방송인 박경림…“텔러에서 리스너로 다시 배울 것”

1998년 데뷔해 2000년대 초반까지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휩쓸었던 방송인 박경림. 당시 사각턱, 특이한 목소리, 걸출한 입담으로 예능계 새로운 판도를 이끌었던 그가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박경림은 이를 기념해 오는 10월 19일부터 3일간 신개념 공연 '리슨콘서트'를 펼친다. /사진=홍봉진 기자<br>
1998년 데뷔해 2000년대 초반까지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휩쓸었던 방송인 박경림. 당시 사각턱, 특이한 목소리, 걸출한 입담으로 예능계 새로운 판도를 이끌었던 그가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박경림은 이를 기념해 오는 10월 19일부터 3일간 신개념 공연 '리슨콘서트'를 펼친다. /사진=홍봉진 기자


2000년대 초반, 예능 프로그램의 판도를 죄다 바꾼 주인공은 ‘예능의 신’ 박경림(39)이다. 오디오와 화면에 적절한 비율과 미학을 강조했던 예능오락의 두터운 공식을 그가 철저히 무너뜨렸기 때문.

사각 턱은 일반 시청자의 친근성을 강조하는 무기로, 특이한 목소리는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생생함으로, 틈을 보이지 않는 쉼 없는 입담은 흡인력의 원동력으로 특화하며 새로운 예능 트렌드를 견인했다. 22살 나이로 2001년 연예대상을 받은 ‘최연소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은 신화로 존재한다.



예능을 시작으로 영화, 드라마, 광고까지 접수한 그가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고 했을 때, 그의 재능과 활약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박수 칠 때 떠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다짐했던 ‘대학졸업 후 미국 유학’이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높은’ 곳보다 ‘넓은’ 곳으로 발길을 돌린 셈이다.

귀국 후 그의 감각은 예전 같지 않았다.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예능감이라는 비판과 함께 구수한 입담도 세련미가 덧칠된 ‘지식의 언어’로 바뀌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게다가 2007년 KBS의 맞선 프로그램에서 만난 회사원과 결혼한 뒤 출산 등 가정생활에 몰입하면서 방송과도 점점 멀어져갔다. 박경림은 그렇게 잊히고 있었다.



“1998년 라디오로 데뷔할 때, 이미 10년 전부터 꿈꾸고 준비했던 결과물에 운도 자연스럽게 따라 과도한 사랑을 받았던 게 사실이에요. 이후 유학과 결혼 등으로 자의든 타의든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걸 인정해요.”

박경림은 2000년대 초반 인기 정점에 올랐을 때 돌연 유학길에 올랐다. 귀국 후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결혼과 출산 등으로 방송과 점점 멀어졌다. 박경림은 "결혼한지 11년쯤 지나니, 조금 편해졌다"며 "11년 만에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사진=홍봉진 기자<br>
박경림은 2000년대 초반 인기 정점에 올랐을 때 돌연 유학길에 올랐다. 귀국 후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결혼과 출산 등으로 방송과 점점 멀어졌다. 박경림은 "결혼한지 11년쯤 지나니, 조금 편해졌다"며 "11년 만에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사진=홍봉진 기자
박경림은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인정한 것도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제가 교만했다고 생각해요. ‘결혼하고 출산해서 그랬는데’ 하고 나름 합리화하던 기간도 있었죠. 그래서 대중이 너무 냉정하게 평가한다고 속으로 원망도 했었는데, 아니에요. 결국 제 문제였어요. 대중은 너무나 정확해요.”

올해 방송 데뷔 20주년을 맞아 인터뷰에 나선 박경림은 특유의 쾌활함과 긍정적 기운을 잃지 않으면서 어떤 비판적 질문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특히 소수의 비판을 들려줄 땐 남보다 자신의 문제점에 더 귀 기울였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게 유학 가서 배운 새로운 문화나 영어 같은 것을 보여주면 대중이 좋아할 거라고 착각했어요. 소위 잘난 척이 저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거죠. 스스로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대중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대중이) 저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워하는 거라고 봐요.”

결혼·출산 등으로 조심해야 했던 언행도 이제 “프리"라며 활짝 웃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 신상이 공개되는 등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이젠 아이도 컸으니 편해진 부분도 있어요. 11년 만에 재도약 한번 꿈꾸려고요. 하하.”

방송인 박경림. /사진=홍봉진 기자<br>
방송인 박경림. /사진=홍봉진 기자
데뷔 20주년에 맞춰 박경림은 새로운 개념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경림 토크콘서트’의 연장선에 있는 무대지만, 주인공이 다르다. 판은 박경림이 깔지만, 무대의 화자는 관객이기 때문.

“최근에 여러 경험을 많이 했어요. (영화관) 발레 파킹하다 주차요원과 10분간 수다를 떠는데, 영화 얘기하다 어느새 그분의 인생을 듣게 됐죠. 동사무소를 가서 서류를 뗄 땐 담당 공무원의 자녀 얘기를 우연히 또 듣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지금까지 진행자로 나서면서 상대방의 얘기를 편견 없이 제대로 들어준 적이 있었나 반문하게 되더라고요. 제 얘기는 잘했지만,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텔러’가 아닌 ‘리스너’로서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오는 10월 19일부터 3일간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리는 ‘리슨콘서트’는 관객의 준비된 사연이 아닌 즉석에서 각자가 지닌 스토리를 들려주고 듣는, 그야말로 ‘개방형 토크’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무대에서 박경림의 역할은 관객이 그런 소통에 동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다.

데뷔 20년에 그가 느끼는 소회와 목표는 딱 한 가지. 지난 20년간 받은 사랑을 앞으로 20년간 어떻게 되돌려줄 수 있는가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은 능력이 아닌 운 때문이라는 겸손한 태도 덕분인지 그의 인맥은 여전히 두텁고 촘촘하다.

지난 20년간 받은 사랑이 자신의 능력보다 운 때문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박경림. 그는 "앞으로 받은 사랑을 어떻게 갚으며 살아갈지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홍봉진 기자<br>
지난 20년간 받은 사랑이 자신의 능력보다 운 때문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박경림. 그는 "앞으로 받은 사랑을 어떻게 갚으며 살아갈지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홍봉진 기자
“제 성격의 장점이자 단점이 어떤 사람을 보면 좋은 것만 보인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제가 좋은 것만 보니, 상대방도 나를 좋아한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단점을 보는 훈련이 안된 게 좀 흠이라는 얘기도 가끔 듣죠.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보는 단점을 저도 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박경림의 입담과 긍정적 사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상이군인회 은평지구 회장인 아버지는 늘 마이크를 놓지 않고, 계모임에서 “난 아니야” 내 빼는 어머니는 어느새 주부가요열창에 나가 주도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족이 모이면 서로 자기 얘기하느라 진을 빼기 일쑤다.

최근 박경림은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진행자로 걸출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새 매무새를 갖추고 다시 등판한 예능의 전설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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