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작곡 과정에 들어가 채우고 싶었다”…재즈뮤지션의 쇼팽 연주기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8.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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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버클리 음대 동문 재즈뮤지션 피아니스트 고희안과 색소포니스트 신현필…음반 ‘디어, 쇼팽’ 통해 클래식에 첫 도전

피아노와 색소폰 연주에서 각각 두각을 나타내는 고희안(왼쪽)과 신현필은 버클리음대 동문이다. 이들은 최근 음반 '디어, 쇼팽'을 내고 클래식 음악에 처음 도전했다. 클래식 악보 몇줄을 바탕으로 수놓은 재즈적 색깔은 외국 음반을 듣는 듯 세련되고 리듬감이 넘친다. /사진=이기범 기자피아노와 색소폰 연주에서 각각 두각을 나타내는 고희안(왼쪽)과 신현필은 버클리음대 동문이다. 이들은 최근 음반 '디어, 쇼팽'을 내고 클래식 음악에 처음 도전했다. 클래식 악보 몇줄을 바탕으로 수놓은 재즈적 색깔은 외국 음반을 듣는 듯 세련되고 리듬감이 넘친다. /사진=이기범 기자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반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와 1cm쯤 분위기가 다르고, 1mm쯤 차이로 ‘감동의 미학’이 전해지는 이 음반의 정체가 궁금했다.

창작자의 이름을 발견하기 전까지 작품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외국 재즈 아티스트의 그것으로 쉽게 떠올릴 만큼 정교하고 세련됐기 때문. 여기에 설명하기 어려운 고풍스러운 맛까지 배어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은 더 커졌다.



‘디어 쇼팽’(Dear Chopin)이란 음반으로 쇼팽을 즉흥 연주한 이들은 재즈 피아니스트 고희안(42)과 색소포니스트 신현필(39)이다. 이름이 밝혀지기 전까지 고희안을 빌 에반스(피아노)라고 해도, 신현필을 존 콜트레인(색소폰)이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이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버클리 음대 동문다운 출중한 실력도 그렇지만, 오랜 세월 재즈를 꼭짓점으로 두고 수놓은 다채로운 실험적 색깔의 노하우가 이 음반에 오롯이 집결됐다.



영화음악에서 인도밴드와의 협연까지 장르나 구성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신현필이나 밴드 프렐류드를 이끌며 국악과도 연합 전선을 형성하는 고희안의 멈출 줄 모르는 ‘음욕’(音慾)은 이제 클래식으로까지 번져 아슬한 경계의 문화를 실험하는 중이다.

피아니스트 고희안. /사진=이기범 기자피아니스트 고희안. /사진=이기범 기자
클래식을 소재로 쓰고 재즈를 방식으로 삼는 이 음반은 클래식과 재즈가 다르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재즈와 클래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하는 클래식은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는데 비해, 재즈는 아래에서부터 완벽하게 가는 과정의 음악이어서 다르다고 느낄 것 같아요. 하지만 완벽한 클래식도 분명 과정이라는 게 있었을 거예요. 그런 과정을 우리가 색다르게 숨을 넣어 완벽함에 이르려고 하는 거고요.”(고희안)


“녹음이 불가능한 시대에 유일하게 남겨진 악보라는 기록으로만 본다면 ‘연주’의 문제가 중요할 수 있잖아요. 만약 쇼핑이 살아있었다면 훌륭한 즉흥연주자가 아니었을까요?”(신현필)

도전과 실험에 익숙한 두 사람은 남겨진 쇼팽의 열 몇 장짜리 악보만 의지한 채 뼈대와 속살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베이스나 드럼을 추가하면 더 근사한 음악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솔로이스트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고 서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었다.

피아노가 솔로로 나서면 리듬의 공백을 색소폰이 맡고, 색소폰이 앞으로 나아가면 피아노가 엄호를 하는 식이다. 고희안은 “밴드랑 할 땐 베이스 등에 짐을 덜며 누울 수 있는데, 둘이 할 땐 기댈 때가 없었다”며 “그런 불편한 상황에서도 얻은 건 많았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고희안(왼쪽)과 색소포니스트 신현필은 최근 내놓은 음반 '디어, 쇼팽'을 통해 쇼팽의 작곡 과정에 들어가 즉흥 연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단 두 사람이 참여한 음반은 서로가 때론 솔로이스트로, 때론 리듬 연주자로 역할을 바꿔가는 연주로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이기범 기자<br>
피아니스트 고희안(왼쪽)과 색소포니스트 신현필은 최근 내놓은 음반 '디어, 쇼팽'을 통해 쇼팽의 작곡 과정에 들어가 즉흥 연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단 두 사람이 참여한 음반은 서로가 때론 솔로이스트로, 때론 리듬 연주자로 역할을 바꿔가는 연주로 완성도를 높였다. /사진=이기범 기자
서로의 소리를 더 집중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고 세고 여린 조율의 부분에서 ‘오버’했던 자신의 사운드를 반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연주했을 뿐인데도, 결핍이나 공백의 흔적이 없다. 때론 5인조 퀸텟 편성의 균형있는 화음감을 제공하다가도, 어떤 곡에선 소규모 오케스트라의 위엄이 느껴진다. 곡 자체가 지닌 원형의 느낌을 넘어, 그 본질이 품은 스토리의 시작과 끝을 내다보고 연주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할까.

이들은 쇼팽을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첫 곡 ‘Nocturne Op.62, No.2’부터 마지막 곡 ‘Prelude Op.28, No.4’까지 수록곡 11개는 모두 ‘재즈적’이지만 작곡가 쇼팽의 ‘의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작은 모티브(2, 4마디)를 계속 활용하는 ‘클래식적’ 운용의 묘를 잃지 않았다.

색소포니스트 신현필. /사진=이기범 기자<br>
색소포니스트 신현필. /사진=이기범 기자
두 사람은 “어떤 테마의 색깔을 규정짓지 않고 결과물이 나오는 상황에 집중했을 뿐”이라며 “그래서인지 다양한 해석의 곡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쇼팽의 ‘히트곡’은 이 음반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신현필은 “쇼팽의 모든 곡을 들어보고 연주했는데, 색소폰 소리와 어울리지 않은 곡은 다 뺐다”며 “나름 매력을 잘 살릴 수 있는 곡만 준비했는데, 어떻게 들으실지 기대된다”고 했다.

모든 수록곡이 클래식에선 좀처럼 맛보기 힘든, 그루브(groove·리듬감)가 양념처럼 배어있다. 살짝 들뜬 리듬감에 우울했던 기분이 풀릴 땐 쇼팽 전문가들도 이 낯설고 독특한 음악에 박수 한번 건넬지 모르겠다. 쇼팽이 환생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내가 그렇게 연주하고 싶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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