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헤비메탈’ 회생기…“조악한 현실 너머…”

머니투데이 제천(충북)=김고금평 기자 2018.08.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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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리뷰③> ‘감자마을 메탈밴드’

중년의 ‘헤비메탈’ 회생기…“조악한 현실 너머…”


한때 폴란드 메탈계의 전설적 밴드로 통했던 엑스터미네이터(파괴자)의 리더가 죽자, 나머지 멤버 4명이 장례식장에 모여 과거 아름다운 추억을 재생한다. 어릴 때 죽기 살기로 밴드에 집중했던 이들도 나이 들고 장가가자 꿈은 조각나고 현실만 남은 채 그럭저럭 살아간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절친들도 ‘밴드’라는 공통분모를 덜어내니, 다시 서먹한 관계로 일상에서 마주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새 시장이 들어온다. 여성 시장은 어릴 때 이 밴드를 기억하고 마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다시 밴드를 구성해달라고 요청한다. 합주실도 마련해 주고, 지원금도 주고 매주 공연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걸리는 건 어릴 때 몸 바쳤던 ‘헤비메탈’ 대신 말랑말랑한 ‘팝’을 연주해야 하는 것. 멤버들은 그간 잊고 있었던 밴드의 꿈을 찾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은행에서 안주의 삶을 사는 세컨 기타리스트,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드러머 등 동떨어진 삶을 사는 멤버들은 ‘자유’와 ‘행복’이라는 가치 안에서 주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뭉친다. 가슴 속엔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과거 헤비메탈의 열정이 살아 숨 쉬지만 정체성 고수도 잠시, 곧바로 현실과 타협하며 ‘밴드 놀이’에 안착한다.

밴드를 재결성하자고 다른 멤버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 보컬은 “다른 여자랑 처음 키스하는 느낌”이라며 팔딱 뛰는 심장을 같이 느껴보자고 설득한다. 소프트한 팝을 연주한 뒤 한 멤버는 “이 공연 이후 거울은 못 볼 것 같다”며 상업적인 음악에 매몰된 자신을 창피해 하기도 한다.

빠른 전개의 속도감, 유머와 재치가 녹아든 영화는 중년 아저씨들의 ‘꿈찾기 프로젝트’쯤으로 해석될 법하다. 제목처럼 감자마을에서 헤비메탈 곡을 듣기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곡을 만날 뿐이지만, 이 한 곡을 위해 수많은 해프닝을 겪어야 하는 과정의 재미가 남다르다.


밴드의 꿈을 찾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도 해야 하고, 아이 저녁 식사를 훔쳐 동료 멤버에게 갖다 주는 희생정신도 감수해야 하고 정신병원에서 탈출도 감행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전복하는 것이 아닌 전환한다는 관점에서 늦깎이가 보여주는 즐거운 용기가 신선하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가, 어떤 결점과 두려움으로 하고 싶은 일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건 아닐까. 여러 질문들을 받으며 대답해야 할 것 같은 작품이다. 마지막 헤비메탈 곡 ‘타임 투 킬’(time to kill)을 부를 때 드러나는 보컬의 포효가 아직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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