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 vs 젊음’의 구도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오카시오가 성별(여성), 인종(히스패닉) 등 소수계를 대변했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민주당 사회주의자를 전면에서 내세우고 돌풍을 일으켰다. 오카시오는 가치를 제시했고 지지를 이끌었다. 노회한 정치인은 패기에 무릎 꿇은 게 아니라 시대 흐름에 밀려났다.
실제 2016년 총선 때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의 평균 나이는 55.5세. 2020년 임기 마지막해가 되면 이들의 평균 나이는 59.5세가 된다. 한국 나이로 치면 환갑이다. 그래도 이들은 상대적으로 젊다고 느낄 법하다.
정치권 인사는 “70대가 주축이었던 MB, 박근혜 정부 때 보다 몇 년 젊어진 것 아니냐”고 자조섞인 농담을 던진다. 젊은 정치인이었던 ‘86세대’는 젊은 정치를 키우지 못한 채 늙어간다. 몇 해 지나면 늙은 정치의 한 자리를 차지할 거다. 반대로 젊은 정치가 들어갈 틈은 없다.
과거 간혹 들렸던 ‘정계 은퇴’란 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정치인에게 배수진(背水陣)은 ‘불출마’일 뿐 ‘은퇴’가 아니다. 물론 은퇴했다가도 곧 복귀한다. 기존 정치인에게 유리한 정치 구조 속 이들의 복귀는 어렵지 않다. 게다가 모두 ‘현역’으로 뛰려한다. ‘자문’ ‘고문’ 역할은 달갑지 않다. 한국 사회의 주축이 된 4050세대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경륜은 6070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고령화 사회 대변자는 자신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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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정치의 일정 부분(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설 곳은 없다. 사회는 다층적인데 정치는 단층화된다. ‘늙어가는 정치’와 ‘젊은 정치’를 대비하는 것은 ‘세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경험과 연륜은 폄하돼선 안 된다.
다만 시대와 호흡이 전제돼야 한다. 미국의 오카시오는 미국 민주당의 보수화 흐름에 질린 유권자와 호흡을 같이 했다. 그 시작은 지난 미 대선 때 바람을 일으켰던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였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2016~2017년 촛불과 호흡했던 현 집권여당에 국민들은 ‘촛불 이후’를 묻는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주목한다. 하지만 8월 25일로 예정된 여당의 전당대회로 가는 여정에선 희망, 가치를 찾기 어렵다. 현 지도부 2년이나 여당 1년에 대한 평가는 없다. ‘정권 재창출’ ‘공천 시스템 개혁’ ‘이재명’ 등이 집권 여당 전당대회의 키워드라니….
언제나 가치를 선점하는 게 ‘진보’의 강점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예컨대 정부는 ‘규제 혁신’으로 난리법석인 데 정작 여권은 스스로 과거의 프레임에 몸을 담근다. 10년전 논란거리인 은산분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치고 받는다. 여전히 ‘삼성 VS 반삼성’ ‘재벌 VS 반재벌’의 획일적 구도에 빠져 있다. 잣대가 ‘올드’하니 논쟁도 꼰대스럽다.
‘규제 혁신=스타트업 육성’이란 진테제보다 여전히 ‘규제 혁신=재벌 특혜’라는 안티테제가 익숙하다. 정치가 늙어간다는 것은 가치가 고루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위기는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없을 때 찾아온다.
박재범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