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19일 청와대에 보고된 기무사의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사진 = 뉴스1
언론 통제 계획, 계엄 반발의원 사법처리 방안 등 실제 계엄령 시행을 가정하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문건이라는 게 청와대와 여권의 판단이다.
세부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1979·80년 발령됐던 비상계엄 조치와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상당 부분 고려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기무사가 1979년 계엄령 선포 상황을 고려했다는 시각이 있다. 79년 10월 27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선포된 비상계엄에서 당시 정승화 육군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기무사는 이번 계엄령 문건을 작성하면서 계엄사령관은 육군총장이 맡고 합참의장은 북한 도발에만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에 규정된 군 지휘 체계를 무너뜨린 것인데 '성공했던 쿠데타'의 전례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라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1990년 합참 조직이 지금과 유사한 형태로 개편됐고 94년 '평시 작전권'이 미국군에서 한국군으로 이양되면서 합참의장이 군령권자로 공식화 됐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을 육군총장이 맡도록 한 것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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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무사 문건에는 언론검열을 통한 보도통제에 더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통제가 포함됐다. 과거 계엄 상황에서도 언론 출판물에 의한 보도는 사전 검열을 받도록 했다. SNS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언론 통제만으로 여론 확산을 막을 수 있었지만 달라진 환경을 고려한 것이다.
과거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주요 시위가 진행됐던 만큼 전국의 모든 대학에 휴교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탄핵정국 당시 촛불집회가 범 국민적 평화시위였던 점을 고려해 휴교령 조치는 검토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무사 문건의 국회 무력화 방안은 계엄 반대의원을 사법처리하는 형태로 계획됐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을 차례로 체포 또는 구금해 의회 세력을 무력화시켰던 5·17 당시의 국회 무력화 방안이 '합법'의 테두리에서 준비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서울 한복판에 전차와 장갑차 등 무장병력을 투입한다는 계획만큼은 과거 계엄과 다를 것이 없다.
한편 군 기무사문건 특별수사단은 수사 착수 2주째가 되는 23일부터 관련자 소환조사 등 수사를 본격활 계획이다. 문건 작성의 최초 지시가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는지, 이러한 지시가 어떤 형태로 하달돼 이행됐는지를 판단할 방침이다.
필요할 경우 관련 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 외에도 문건의 존재를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국방부 관련 부서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