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들이 이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에도 수사기관은 이를 묵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판례 등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구속장구는 피의자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명백히 그 필요성이 확인된 경우 사용해야 한다.
◇강력사범 아니어도 무조건 수갑·포승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의자 조사 당시 수갑이나 포승이 채워진 채 조사를 받았다'고 응답한 피의자는 경찰 단계에서 150명 중 절반 이상(56.7%, 85명), 검찰 단계에선 4명 중 3명 꼴(76%, 114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자해나 도주 등의 위험이 높아 계구 사용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는 마약사범이나 살인·강간·조직폭력 등 강력범죄 혐의자들을 제외하고 이뤄졌다. 사실상 수사기관이 혐의의 경중이나 계구의 필요성 등을 따지지 않고 관행적으로 묶어둔 채 피의자 조사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피의자 조사가 여러 차례 이뤄진 경우 모든 피의자신문 조사에서 계구를 차고 조사받았다고 응답한 피의자도 경찰 단계에서 54명(65.9%), 검찰 단계에서 88명(77.2%)이나 됐다. 지난해 6월에는 경찰에서 3차례 연속 피의자신문을 받던 A씨가 신문 도중 지병인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A씨는 대기시간과 3차례의 피의자조사 시간 동안 계속 수갑을 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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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달라" 요청해도 묵살…경찰서 수갑 풀어준 건 단 1명
피의자가 조사 과정에서 계구를 벗겨달라고 요청해도 대부분 묵살됐다. 피의자 64명이 경찰 조사 중 계구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진 경우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계구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한 피의자 25명 중 80%(20명)도 검사나 교도관의 해제 거부로 계구를 찬 채 그대로 조사를 받았다.
인권위 관계자는 "응답자 대다수가 수갑과 포승계구가 동시에 채워진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응답하고 있어 과도한 장비 사용으로 피의자 자기방어권 침해는 물론 신체적 고통 유발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계구를 찬 피의자들은 5명 중 1명 꼴로 팔이나 어깨 등에 통증이 생겨 힘들었고, 심리적으로 위축돼 진술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경찰 단계를 가리지 않고 "조서를 읽어보거나 서명날인을 할 때 대단히 불편했다"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 나왔다. 인권위는 "수갑과 포승의 사용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수사과정확인서'에 취지와 이유를 기재하라"고 검·경에 권고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피의자신문 조사 절차에서 피의자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의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계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도주, 폭행, 소요, 자해 등의 위험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도 지난해 수사기관 조사에서 변호인의 수갑 해제 요구를 거부한 검사의 조치에 대해 검사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