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그 자체보다' 더 소설같은 이틀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8.06.0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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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진도]삼국지 텍스트와 게임의 결합…국내외 정치 현실서도 삼국지의 책략 엿보여

‘이것은 삼국지 그 자체다’

올해 초 등장해 삼국지와 게임 매니아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광고 카피 문구다. CF에 등장하며 삼국지를 언급하는 이는 평역 삼국지(전 10권)로 19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소설가 이문열이다. 텍스트 삼국지를 대표하는 작가와 삼국지 게임 속 가상현실이 만난 것이다.

지금부터 약 1800여년 전의 중국 이야기를 다룬 소설 삼국지연의(삼국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시대부터 많이 읽혔다. 현대에 들어서도 최영해, 박태원, 박종화, 정비석, 황석영, 김홍신, 조성기, 장정일 등 내노라하는 작가들은 한번씩 손을 댔다. 물론 삼국지 저자로 가장 각광받은 이는 이문열이었다. 그의 책을 낸 출판사 민음사도 옥탑방 한 칸에서 창립해 삼국지의 성공 등을 기반으로 문학과 인문학 출판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로 성장했다.



1980년대 후반 평역 삼국지 첫 번째 권을 출간한 이문열은 한글 세대에 맞는 삼국지를 염두에 뒀다고 말했었다. 이전 1960년대 말부터 삼국지 시장을 지배한 이가 일제 치하에서 교육을 받은 월탄 박종화였던 만큼 이문열은 한 세대가 지났다고 생각한 것. 30년 뒤에 그가 광고모델이긴 하지만 게임을 소설 삼국지의 다음 버전 쯤으로 여겼음직도 하다.

사실 게임업계에서 삼국지는 불멸의 대박 소재다. 소설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10편 이상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온 일본 게임회사 코에이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는 기억하고 있다. 이문열을 홍보 모델로 내세웠던 '삼국지M', 3D 게임 '삼국지 블랙라벨', ‘토탈워 삼국지’, '삼국지 조조전온라인', '삼국블레이드' 등 올해 출시됐거나 인기를 끈 삼국지 기반 게임도 여러 가지다. 출판계에서도 해설본이나 다양한 연령대를 겨냥한 삼국지가 거의 매달 나온다.



유비와 제갈공명, 촉한 정통론을 기반으로 한 소설 삼국지가 명나라 이후로 수백년 동안 유행한 것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이민족 청나라에 지배당한 한족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임진왜란 당시에 군대를 보내준 명에 대한 의리를 수백년간 이어가려던 조선의 상황도 비슷하다. 물론 이문열 삼국지가 유행한 배경에는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도입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한국적 상황도 있긴 하다.

삼국지 게임의 득세 이유는 또 다르다. 삼국지를 기반으로 한 게임은 아이디어 이용료가 없어 중소·중견 게임사의 진입장벽이 낮은데다 익숙한 소재 덕에 지속적으로 이용자를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

중국의 삼국시대에 중국보다 더 익숙한 한국의 2018년 6월, 현실은 어떤가. 국제적으로는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 등을 상대로 한 대한민국의 균형자론과 북한의 벼랑끝 외교를 넘어선 북미정상회담에서의 트럼프와 김정은의 담판이 예정돼 있다. 지방선거가 코 앞인 국내 정치적으로는 남북한 교류성과에 대한 평가, 2년 전 총선처럼 양당제를 넘어선 제3당의 지속, 지역별 특정정파 독식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삼국지 게임의 매력 중에는 조조나 유비가 아닌 또다른 인물이나 역사의 패자가 삼국통일의 대업에 나서는 ‘나만의 삼국지’라는 묘미와 의외성도 있다. 현실 세계로 다시 눈을 돌리면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남북의 지도자는 서로 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삼고초려, 고육계, 연환지계 등의 전략을 사용해 협상테이블을 차리고 세계의 시선을 싱가포르로 모으는데 일단 성공한 상태다.

‘회오리 바람처럼 정신없이 벌어지는 반전의 연속’이라는 외신의 평가 속에 삼국지의 클라이맥스 적벽대전처럼 동남풍같은 훈풍을 맞으려면 6월12 ~ 13일 회담과 선거, 숨가쁜 일정에 대한 관심과 한표가 필수적이다. 첫장을 펴지 않거나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책이건 게임이건 삼국지의 세계에 빠져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배성민 문화부장배성민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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