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협상전략? 충동적 결정? 시진핑 배후설? …북미정상회담 취소의 진짜 이유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2018.05.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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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비핵화 vs 단계적 포기…메울 수 없는 의견 차이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 분석도…서로 회담 개최 여지 남겨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현지시간)워싱턴 백악관에서 경제성장, 규제완화,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에 서명한 뒤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6월12일 개최하기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현지시간)워싱턴 백악관에서 경제성장, 규제완화,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에 서명한 뒤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6월12일 개최하기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음달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 취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공개서한을 보내 "최근 북한이 성명을 통해 보여준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에 근거할 때 지금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전해진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이에 외신과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배경을 둘러싼 다양한 분석과 의견을 쏟아냈다.

◇각자가 원하는 것 달라…단번에 틈새 메우기 불가능



북미 정상회담 취소 이유 중 하나는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보장과 제재 완화, 경제 지원 등을 대가로 즉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할 것을 바랬지만,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와 즉각적인 경제 지원을 기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신뢰가 크게 부족한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양측이 믿을 수 없는 상대방과 회담을 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는 얘기다.

북한 입장에서는 먼저 핵을 포기했다 망한 리비아나 최근 트럼프 정부가 핵협정을 탈퇴한 이란 사례가 걸린다.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2003년 핵 포기를 결정하고 미국으로 모든 핵 개발장비를 보냈지만, 나중에 미국 등 서방이 지원하는 민주화 세력에 처참하게 살해됐다. 뉴욕타임스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을 없애기 위해 리비아 모델을 거론했지만 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카다피가 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건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상황도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체결한 이란과의 국제 핵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북한 입장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미국을 직접 목격한 셈이다.

미국도 북한이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은 그동안 수차례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북한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핵무기 개발 중단과 경제 협력을 강조했지만, 뒤로는 체제보장을 위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2005년에는 6자회담에서 북한이 미국·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와 경수로 제공을 대가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 포기를 약속했지만 바로 이듬해 1차 핵실험을 강했다. 2008년에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기도 했지만, 다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밀어붙였다.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6자회담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볼턴 보좌관은 지난 16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모든 시도를 할 것이지만, 회담의 목적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국의 비핵화 요구 수준 등을 이유로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매우 익숙하다"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퇴역 장성 웨슬리 클락은 이날 CNBC에 기고한 글에서 "주한미군 감축, 북한의 재래식 전력과 생화학 무기 해제, 일반인 납치, 사이버 공격, 미사일과 핵 기술 수출 등 더 큰 문제들이 많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이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미국이 핵협정을 탈퇴한) 이란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화당 중진으로 상원 외교위 소속인 마르코 루비오 의원도 애초부터 김정은은 미국과 합의할 생각이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에 대해 100%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루비오 의원은 "김정은이 애초부터 합의를 원하지 않았고 지난 2주 동안 의도적으로 대화 방해공작을 부렸다"며 "미국이 책임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전격 취소와 관련, "미국은 북미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며 최근 며칠간 싱가포르로의 이동 계획 등에 관해 논의하자는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 북한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전격 취소와 관련, "미국은 북미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며 최근 며칠간 싱가포르로의 이동 계획 등에 관해 논의하자는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 북한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럼프의 협상 전략? 아니면 충동적 결정?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회담 취소는 '회담 취소' 카드를 이용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일종의 길들이기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특유의 협상 전술일 수 있다는 의미다. 미 의회 전문매체 더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언급한 테이블에서 기꺼이 퇴장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 말미에서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하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한 부분이 바로 이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전략은 거의 모두 '제로섬 게임'(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라며 "이란 핵협정과 중국과의 무역 갈등,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 설치 문제 등에서 모두 처음에는 끔찍한 위협을 하면서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강요하는 패턴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소식이 전해진 이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문에서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가 단지 충동적인 결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리비아 모델을 자주 언급해 북한을 자극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회담을 취소했다”며 "오히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해 회담을 계속 진행할 의지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고록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함께 쓴 토니 슈워츠는 이번 결정이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자존심 문제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슈워츠는 "트럼프는 굴욕과 수치심에 대해 병적인 두려움이 있다"면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약하고 작아 보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격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현지시간) 랴오닝 성 다롄해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격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현지시간) 랴오닝 성 다롄해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이 북한 조종해 판 깼나…'시진핑 배후설'

중국이 북한을 뒤에서 조종해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적극 협상에 임하던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 번 만난 이후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의 입장 돌변의 배후로 시 주석을 직접 지목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한·미 정상회담 시작 전 기자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 번째 만난 다음에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를 계기로 주한미군 감축 등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줄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클락 장군은 "북한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중국은 오랫동안 주한미군 철수를 바랬으며, 북한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국이 주한미군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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