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52시간 근무…고용주·노동자들의 '남겨진 고민'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이정혁 기자, 김소연 기자, 양성희 기자, 지영호 기자 2018.05.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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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 시대 그레이존] (종합)

편집자주 7월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탄력근로와 재량근로, 포괄임금 등은 방침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그레이 존’으로 남아 있다. 정부는 ‘가야할 길’이라며 재촉하지만 당사자인 고용주와 노동자들의 눈에 비친 길은 비포장도로다. 그 험난한 풍경을 짚어본다.

5년간 4700억 투입해 근로시간단축 신규채용·임금감소 지원
[52시간 시대 그레이존] ①일자리함께하기 사업 확대개편해 총 25만~30만명 근로자 지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첫번째)이 17일 오전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근로시간 단축 현장안착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첫번째)이 17일 오전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근로시간 단축 현장안착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가 1주 52시간 근로를 정착시키기 위해 기업의 신규채용 인건비와 기존 재직자의 임금감소분을 직접 지원한다. 5년 동안 4700억원을 들여 신규채용은 1인당 월 최대 100만원, 임금감소분 보전은 월 최대 40만원까지 각각 3년간 지원한다.



정부는 17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 같은 '근로시간 단축 현장안착 지원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 근로자의 임금감소 등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교대제를 도입·확장한 기업을 돕는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을 확대한다. 우선 근로시간을 조기에 단축한 기업의 혜택을 늘린다. 현재 300인 이상 기업은 오는 7월 1일부터 근로시간을 줄이고 50~299인 기업은 2020년 1월 1일부터, 5~49인 기업은 2021년 7월 1일부터 적용된다. 기업 규모별로 6개월 이상 근로시간 단축시기를 앞당길 경우 지원금과 지원기간이 확대된다.



근로시간을 조기에 단축한 300인 미만 기업은 신규채용 1인당 월 최대 80만→100만원씩 최대 2년→3년간 지원한다. 기존 재직자 임금 보전도 현행 최대 2년간 월 40만원을 최대 3년까지로 기간을 연장해 지원한다.

300인 이상 기업 역시 신규채용 1인당 인건비 지원을 40만→60만원으로 인상한다. 재직자 임금보전 비용은 300인 미만 기업과 같으며 지원대상은 500인 이하 제조업에 한정됐으나 이번에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는 금융업 등 21개 업종도 포함된다.

고용부는 일자리함께하기 사업을 통해 2022년까지 25만~30만명의 근로자가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총 4700억원으로 전액 고용보험기금에서 충당한다.


아울러 평균임금이 줄어들면서 퇴직금 감소가 예상되는 경우를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로 인정하도록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을 개정한다. 대신 중간정산금을 근로자가 사용하기보다 IRP(개인형 퇴지연금 제도)에 적립하도록 유도해 노후 소득재원 확보를 돕는다.

근로시간을 조기에 단축한 기업은 공공조달 시 가점을 받고 정책자금 등도 우선 지원 받는다. 최대 50억원까지 설비투자비를 1%대 금리에 빌려주는 일자리 함께하기 설비투자사업 대상으로 우선 선정하고, 제조업 공정혁신 등에 소요되는 자금도 우선 지원한다. 제조업 등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요율을 10% 줄여준다. 외국인 근로자도 우선 배정한다.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장시간 근로기업의 컨설팅 지원도 200→700개소로 확대한다. 근로시간 특례제외 업종들은 업종별 표준모델을 개발해 보급한다. 기업의 생산시스템 효율을 높이기 위한 스마트공장 설비 구축, 전문 연구·기술인력 양성도 지원한다. 내년부터는 근무혁신 계획을 실천하는 기업을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근무혁신 인센티브제도 도입한다.

현재 3.4%에 그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등 유연근로제의 활용도 늘린다. 2주~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시간근로제 등 유연근로제의 매뉴얼을 만들어 기업들에게 배포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산업현장의 요구에 따라 올해 실태조사를 통해 제도개선을 추진한다.

이 밖에도 특례에서 제외되며 어려움을 겪는 노선버스, 건설업, 사회복지서비스업, ICT서비스업 등은 소관부처별로 업종별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모은다. 특히 노선버스업은 노·사·정 협의를 통해 현재의 운송서비스 수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500인 규모가 넘는 버스업체에 대해서도 업종별 특화대책을 통해 재정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이 실현될 경우 현재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103만명의 주 평균 근로시간이 최소 6.9시간 줄고, 14만~17만7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보고있다. 산업재해와 노동생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2004년 주5일제가 도입될 때도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산업현장에 잘 안착시킨 경험이 있다"며 "정부는 노사의 공감대를 토대로 주 최대 52시간이 현장에 안착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최우영 기자

52시간 근로시대...포괄임금 등은 숙제
[52시간 시대 그레이존] ②근로시간 특례 제외 21개 업종에 대한 담당부처별 보완책도 미비

근로시간 단축이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작되면서 정부가 연착륙을 위한 재정지원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제도를 뒷받침할 탄력근로제 가이드라인, 포괄임금제 지도지침 등은 시행 한달여를 남겨두고도 ‘안갯속’이다.실질적 보완책이 없이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을 불법으로 내몰고 단시간에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포괄임금제를 적용 받는 근로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일인 7월 1일을 넘겨 나올 것으로 보인다. 포괄임금제는 연장·휴일근로 수당을 총 연봉에 포함해 계약하는 제도로 사무직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실제 초과근로와 상관 없이 수당을 책정하는 관행으로 인해 장시간 근로의 요인으로 꼽혀왔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과 정부지침 등에 규정되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로만 존재하는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 노사의 서면합의를 통해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수당 측정방식의 간편함 등을 이유로 근로시간이 명확한 사무직 등에도 널리 쓰여왔다. 지난해 기준 상용직 10인 이상 기업체 중 52.8%인 6만1000여곳이 포괄임금제를 쓰고 있다.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될 경우 절반 넘는 기업들이 불법으로 판정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는 52시간 근로가 포괄임금제 근로자에게도 적용된다는 원칙적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기업들은 포괄임금제의 적절한 적용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진행된 포괄임금제 지도지침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원 판례를 그대로 적용하면 현장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있다”며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은 막아야 하지만 실태를 반영해서 전국의 근로감독관들에게 통일된 지침을 마련해주기 위해 시일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준비하기로 한 탄력근로제 개선안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탄력근로제는 집중근로가 필요한 성수기, 신제품 출시시기 등에 근로시간을 법정 상한선보다 높게 책정하고, 비수기 등에 근로시간을 줄여 단위기간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한도에 맞추는 것이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21개업종에서 탄력근로제 수요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업, 광고업 등은 특정시기 장시간 근로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례제외 21개 업종 중 50인 미만 사업장이 90%를 넘기 때문에 이들의 근로시간 단축이 시작되는 2021년까지 대책을 보완할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10% 가량의 사업장을 위한 마땅한 대책은 아직 없다.

산업 현장에서는 최장 3개월로 정해진 단위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집중근로시기가 3개월을 넘기는 산업도 있을 뿐더러 분기마다 노사합의를 거쳐야 하는 경직성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과 미국 등의 탄력근로 단위기간은 1년이다.

고용부가 올해 하반기 탄력근로제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된 뒤라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최대 2만4000여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노선버스업계에서는 최대한 빠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개선안이 늦어질 경우 근로시간 단축과 어려운 버스업계 인력수급이 맞물리면서 경기도를 중심으로 교통대란이 발생하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노선버스 외에도 사회복지서비스업, 방송업 등 근로시간 특례에서 제외되는 업종들은 담당 부처가 가이드라인 등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노사정 협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기 전 선보이기 어렵다.

정부는 이미 존재하는 유연근무 방안인 탄력근로제 외에도 집중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를 기업이 도입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재량근로제는 근로시간을 근로자의 ‘재량’에 따라 실제 근로시간과 상관 없이 책정하는 제도인데, 이 역시 대상 업무만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있을 뿐 적용 요건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안에 재량근로 등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 사업장 지도에 나설 방침이다.

최우영 기자

노동시간 단축 코 앞…재계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해야"
[52시간 시대 그레이존]③신제품 출시, 정기보수 시기 등 고심…"요건 전반 완화해야"

반도체 사업장 자료사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머니투데이DB반도체 사업장 자료사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머니투데이DB
정부가 17일 노동시간 단축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재계에서는 탄력근로제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보다 탄력근로제 도입 요건이 까다로운 만큼 탄력적으로 일하는 시간의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요건 전반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직군의 특성에 따라 탄력근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유럽 등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 단위로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최대 3개월 설정만 가능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전자업계는 오는 7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앞서 현재 자체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탄력근로제 확대 등 노동 사안에 대해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매년 주기적으로 나오는 신제품 출시시기와 연구·개발(R&D) 등 업종 특성상 집중근로 제한 완화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생산직은 주 40시간 생산(8시간·주간2교대)이 정착된 상황인 반면, 사무직과 연구직은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권에 있다. 그런 만큼 직군의 특성에 따라 탄력근무제 확대 적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조선업계는 절박하다. 지금도 일감 부족 탓에 있는 인력마저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조선업 특성상 수주 실적에 따라 언제 갑자기 일이 몰릴지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선업과 같은 수주업은 수주량에 따라 근무시간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며 "융통성 있게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형 장치산업인 정유·화학업계는 대규모 정기보수 작업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될 경우 정기보수 등 이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보니 업계 전반이 고민에 빠진 상태다.

정유·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차보수 기간이나 공장 셧다운 될 때 단기적으로 쓰는 인력이 있는데, 주 52시간제를 지키려면 연차 보수 기간을 길게 늘리거나 인력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현재 뾰족한 방법이 없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주 52시간'에 식품업계 울상.."성수기는 어쩌죠"
[52시간시대 그레이존]④노동집약적 사업많은 식품업계, 주52시간 실시에 부담

국회 본회의에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는 모습./사진=이동훈 기자국회 본회의에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는 모습./사진=이동훈 기자
"취지는 좋지요. 그런데 당장 성수기 인력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정부가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52시간 근무를 의무화하면서 식품업계가 한숨을 내쉬고 있다. 특히 계절성이 뚜렷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성수기철 대체 인력 채용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빙과류를 생산하는 A업체는 아이스크림 성수기(5~8월)를 앞두고 지난달부터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 올해도 무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달 앞서 빙과류 재고를 충분히 비축하기 위해서다.

현재는 정책 시행 전인만큼 기존 직원들이 2교대 시스템로 공장을 가동 중이다. 그러나 7월부터는 주52시간 근무 방침에 맞춰 3교대 체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인력채용이 만만치 않다. 성수기와 비수기 근무시간 격차가 커 정규직 대신 단기 아르바이트로만 머릿수를 맞춰야 하는 탓이다.

유통업체의 에누리 요구 때문에 가뜩이나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빙과업계는 이번 조치로 인건비 부담까지 가중되자 울상을 짓고 있다. A업체 관계자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는데 한계가 있어 계획된 생산량을 맞출지 모르겠다"며 "성수기와 비수기 편차가 큰 업체들은 탄력적 근무제를 적용하면 좋은데, 그 역시 3개월이 최대라서 우리가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닭고기를 가공하는 B업체 역시 삼계탕, 치맥(치킨+맥주) 성수기인 여름을 맞아 고민이 크다. 이 시기엔 공장을 오전 7시부터 밤 12시까지 가동하는데, 정책에 맞춰 채용을 늘리려해도 3D업종이라는 인식 때문에 지원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육가공업체 대부분이 소도시에 위치해 인력 풀이 적다는 점도 신규 채용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직원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육계 가공업 특성상 생산직 근로자 대부분이 50대 이상 중장년층인데, 이들은 근무시간 단축보다 잔업을 통한 특별수당, 야근수당을 수령해 월 소득 높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냉동만두를 생산하는 C업체는 아예 공장 자동화 설비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겨울 성수기마다 단기 인력을 충원하기보다 자동화설비에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분류되는 급식·프랜차이즈 업계는 과거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에 포함됐었기 때문에 1년의 유예기간을 받았다.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급식업체들은 특히 소규모 사업장 운영을 고심하고 있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대형사업장은 추가 채용을 통해 교대 순번을 늘리면 되지만, 소규모 사업장은 운영시간이 길지 않다. 조식부터 석식까지 제공할 경우 대개 14시간 운영되는데, 2교대 도입시 주52시간을 못채우는 근로자들이 생긴다. 또 경쟁수주 체제에서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단가 인상으로 전가하기 어렵다는 것도 업체를 긴장케 한다.

D업체 관계자는 "조리 여사님들은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아 근로시간이 4~5시간인 곳은 아예 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채용도 어렵고,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도 부담스러워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김소연 기자

"회사가 시켜서 하는 야근 아닌데…" 난감한 의류벤더
[52시간시대 그레이존]⑤해외 바이어와의 시차 탓…"근무제 일률적 적용 어려워, 구체적 가이드라인 필요"

삽화=임종철 디자이너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글로벌 브랜드에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의류 벤더회사 들어가고 싶은데요. 야근이 그렇게 많은가요? A사는 새벽에 퇴근한다는데 사실인가요?"

패션업계 취업준비생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와 업계 종사자들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글이다. 패션업계, 특히 의류벤더 업계에서 야근은 흔한 풍경이다. 또 '팀 바이 팀', '바이어 바이 바이어'라는 말이 통용되듯 팀과 바이어에 따라 업무강도의 차이가 크다.

야근이 일상인 의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들도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주 52시간 근무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회사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인데 "업무환경을 일률적으로 맞추기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 특성상 야근이 불가피한 건 해외 바이어와의 시차 때문이다. 저녁·밤 연락이 불가피한 데다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주문이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디자이너는 "야근은 회사가 시키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련,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일종의 보완책인 탄력근무제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현행 3개월로는 부족하고 최소 1년은 필요하다"며 "시즌별로 성수기가 있기 마련인데 의류뿐만 아니라 제조·납품업체 전반에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일이 몰리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를 감안해 최대 3개월의 단위 기간을 두고 '탄력근무제'(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허용한다. 이 기간 중에 특정한 주는 법정 근로시간 초과가 가능하다.

야근 등 초과근무 수당 책정,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비롯해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야근은 자율적이라는 인식이 강해 현재까지 따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왔다"며 "수당 지급 여부를 논의 중인데 책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계약직원들의 처우 문제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맞지만 거기까지는 여력이 되지 않아 난감하다"고 했다. 비용 부담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실제로 업계 상위권에 속하는 한 OEM·ODM업체는 최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부서 효율화 작업을 통해 40명 정도의 직원이 권고사직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회사마다 각종 제도를 시범운영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대표적인 OEM·ODM 회사 한세실업은 최근 들어 야근을 '허가제'로 바꿨다. 부서장의 승인이 있어야 초과 근무가 가능하도록 한 것인데 승인 여부는 문서로 남겨야 한다. 야근을 하더라도 회사 전등과 PC는 밤 9시에 일제히 꺼진다. 수당은 논의 중이다.

양성희 기자

"납품기일 어떻게 맞추라고" 하청中企 '울상'
[52시간 시대 그레이존]⑥탄력근로제 확대·특별연장근로 상시허용 요구

"52시간을 지키면서 발주 받아 기한 내 납품해야 하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인력을 늘리면 단가가 높아져 개발도상국의 저가공세를 견디지 못 할 겁니다."

경기도에서 의류 하청기업을 운영하는 A대표는 17일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된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을 사지에 내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청기업의 주문에 의존하는 하청업체 입장에선 정해진 기한 내에 물건을 납품해야 운영이 가능한데,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납기를 맞출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사업주는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에 따라 최대 3개월까지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주문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中企·벤처 "마땅한 대안이 없다" 울상=특히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거나 연구개발(R&D)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는 중소기업들에게 52시간 근로는 상당한 부담이다. 공장 가동이나 R&D에 차질이 생기면 기업이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기업 C대표는 "신약개발 성공여부는 남들보다 빠르게"라며 "R&D에 52시간 근로를 적용하면 제약사는 신약개발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300인 이하 중소기업은 52시간 근로 적용까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사업부문을 쪼개거나, 인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콘크리트 제조업체 E대표는 "공사기한이 정해져 있는 현장에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며 "사업부별 법인을 분리해 근로시간 적용시점을 우선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동종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인세 인상 등 추가부담 요인이 있어 고심하고 있다는 게 E대표의 설명이다.

초기 성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벤처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당 52시간으로 주어진 기한 내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다. 다만 글로벌 벤처기업들이 '구성원의 행복'을 중요 가치로 삼고 있고, 이미 52시간 근로가 확정된 상태다 보니 주어진 환경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심 중이다. 시뮬레이션 게임업체 F기업 관계자는 "신규게임 출시같이 업무가 몰리는 시기의 경우 3개월 내에서 탄력근로를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확대하고, 특별연장근로 상시 허용해야"=중소기업계는 52시간 근로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탄력근로제 기간을 최고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계절적 요인에 따라 일감이 몰리는 기업이나 업무 집중시기가 특정된 기업이 합법적으로 인력을 배분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3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 2022년 말까지 주당 8시간의 추가근로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도 한시적 규정으로 못박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주당 법정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특별연장근로 8시간까지 사실상 60시간 근로를 상시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정욱조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여야가 이미 탄력근로제를 6개월에서 1년까지 확대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혔고, 특별연장근로도 국회 환노위에서 재연장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며 "아울러 대기업의 납품단가 보장과 외국인근로자 쿼터 확대, 고용 유연화 등 다양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근로자의 임금감소 문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주당 68시간을 채워 일한 근로자의 경우 임금감소가 불가피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5~29인 근로자는 월 32만8000원, 30~299인 근로자는 39만1000원의 임금감소가 예상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감소에 따라 대기업 근로자와의 임금격차 문제가 심해질 수 있다"며 "정부는 보다 세밀하게 정책지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지영호 기자

근로시간 단축에 고용보험료 2% 시대 오나

[52시간 시대 그레이존] ⑦일자리 함께하기 사업 고용보험기금서 재정 모두 충당…요율 인상 가능성 떠올라

정부가 신규채용 인건비 지원과 기존 재직자 임금감소분 보전 등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을 줄일 대책을 내놓았다. 관련 재정이 전액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되면서 기금 안정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필요한 경우 고용보험료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17일 발표한 근로시간단축 안착을 위한 지원대책의 핵심은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이다. 근로시간을 주 52시간 이하로 줄이고 신규채용을 늘릴 경우 기업의 신규채용 인건비를 최대 3년간 1인당 100만원까지, 초과근로 감소에 따른 기존 재직자의 임금감소분을 최대 3년간 40만원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일자리 함께하기는 그동안 기업의 신규채용을 유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3년간 쓰인 예산은 총 205억원 가량인데, 해마다 지원 받은 신규 취업자와 기존 재직자 수는 2000명을 넘기 힘들었다.

고용부는 올해 예산을 지난 3년간 사용액보다 많은 213억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7월1일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 시행시기는 남았지만 미리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사업장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3개월 인건비를 집행한 뒤 사후 지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올해는 1차례만 지급하면 되고 213억원만으로도 지급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부터다. 근로기준법 특례에서 제외된 21개 업종이 근로시간 단축이 내년 7월 시작된다. 50~299인 규모 사업장, 50인 미만 사업장도 2020년, 2021년 순차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가면서 지원해야할 대상은 점점 많아진다. 고용부 재정추계에 따르면 2022년까지 4700억원을 투입해 25만~30만명을 지원하게 된다.

이 기금은 그동안 재정건전성 논란에 시달려온 고용보험기금에서 전부 나간다. 고용보험법상 고용보험기금의 실업급여계정 법정적립금은 해당연도 지출액의 '1.5배 이상, 2배 미만'을 쌓아둬야 하는데 2016년 기준으로 0.8에 그친다. 2016년 실업급여 지출액은 5조8557억원인데, 적립금은 이에 못 미치는 4조9371억원이었다.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이 고용보험기금에 부담을 주면서 고용보험료 요율이 또 한번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용부는 이미 올해부터 실업급여 수급기간과 수급액을 늘리면서 고용보험료율도 1.3→1.6%로 인상하기로 했다. 고용부 고위관계자는 "필요한 경우 고용보험료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의 보완책인 탄력근로제는 아직 실태조사에도 착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부칙으로 '2022년까지 탄력근로제 개선안을 마련한다'고 명시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특히 3개월로 제한된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독일, 일본 등과 같이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종별로 집중근로시기 자체가 3개월을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용부는 올해 하반기 실태조사에 들어가지만 모든 업종을 조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탄력근로제가 필요한 산업 현장이 워낙 많다는 이유에서다.

탄력근로제는 근로시간 특례에서 제외된 21개 업종에서 요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선버스 등은 탄력근로제 도입 없이는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용부는 특례제외 업종의 경우 최소 1년간 1주 68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만큼 내년까지 업계와 근로자의 요구를 업종별 소관부처와 함께 협의해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집중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 방안이 어떤 조건에서 기업들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이르면 이달 안에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노동계에서는 사무직 등까지 광범위하게 포괄임금제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이 실효성을 지니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부터 포과임금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준비중이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한달 남은 현재까지 가이드라인은 '제작중'이다.

다만 고용부는 포괄임금제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는 대법원 판례를 곧이 곧대로 따르기보다는 산업 현장의 실태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고 있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근로감독이 임금미지급 등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올해 7월 1일부터는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엄정하게 감독하고 처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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