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氏] 상표권, 늦게 등록했으면 무조건 '무효'?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8.05.1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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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대법 "객관적 인지도, 모방의 정도, 부정한 목적성 여부 등 종합 고려해야"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내가 먼저 상표를 등록해 시장을 다져놨는데 나중에 남이 홀랑 베껴가는 얄미운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내가 수년간 영업을 해왔는데 공교롭게도 다른 이가 훨씬 전에 등록한 상표와 비슷해 곤욕을 겪는 일도 생긴다. 상표권이라는 무형의 재산권이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순히 상표등록 시점만 기준으로 삼아 상표권을 보호하거나 무효로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다. 후순위로 등록된 유사한 상표라더라도 무효로 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기준을 정한 대법원 판례(2012년 6월28일 선고, 2012후672)가 있어 소개한다.



2009년 일본기업 가부시키가이샤몬테로자(이하 몬테로자)는 한국 특허심판원에 'WARAWARA' 또는 '와라와라' 등의 상호로 영업을 하던 한국 주점업체 에프앤디파트너(이하 에프앤디)가 2007년 식자재 영업을 위해 별도로 등록한 'WARAWARA'(와라와라)를 무효로 해달라는 신청을 냈다.

몬테로자는 1983년 일본에서 설립돼 일본에 '笑笑'라는 브랜드를 등록한 일본 1등 주류 기업이었다. 에프앤디는 2003년 '와라와라' 또는 'WARAWARA'라는 상표를 한국에 등록해 영업을 하다가 2007년 WARAWARA 상표로 '냉동 완두콩' 등 수백건의 식자재를 다루려다가 몬테로자의 공격을 받았다.



문제는 몬테로자의 이 '笑笑'라는 브랜드가 일본어로 '와라와라'(히라가나 わらわら)로 읽힌다는 점이었다. 실제 일본에서 '笑笑'라는 브랜드의 하단에는 히라가나로 'わらわら'('와라와라'로 발음이 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특허심판원은 몬테로자의 청구를 받아들여 에프앤디의 'WARAWARA' 상표가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상표법은 △상품의 보통명사 자체를 상표로 한 경우 △상품의 산지나 품질, 원재료, 효능 등 일반적으로 흔히 쓰이는 용어를 상표로 한 경우 △고유한 지리적 명칭이나 지도를 상표로 한 경우 등 특수한 조건에 걸리지 않으면 상표로 등록한 자에게 상표권을 인정해 주도록 하고 있다. 단 △다른 이가 먼저 등록한 상표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것 △소비자 등 수요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상표와 비슷한 것 △국내외 수요자들에게 다른 이가 보유한 상표로 이미 잘 알려진 것으로서 그 다른 이에게 손해를 입히려 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 등의 조건에 해당하면 상표등록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에프앤디는 "표장의 유사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국내의 일반 수요자인데 국내 외국어 보급 수준에 비춰 국내 수요자의 입장에서 볼 때 '笑笑'가 일본어 발음인 '와라와라'로 발음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몬테로자의 브랜드와 자사의 브랜드의 유사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또 "독자적으로 영업상 신용을 쌓고 인지도를 성장시켜 오는 과정에서 상표를 출원등록한 것이지 몬테로자가 이룬 영업상 신용이나 고객 흡인력에 편승해 부당한 이득을 얻거나 몬테로자에 손해를 가하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2012년 1월 특허법원은 에프앤디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의 33.4%가 일본어를 배운 경험이 있고 '笑笑' 밑에 히라가나로 わらわら라는 문구가 있을 때 한국식 발음인 '소소' 대신 '와라와라'라고 읽은 이가 훨씬 많았다는 점 △몬테로자가 일본 1위 주점업계로 일본 내 인지도가 매우 높다는 점 △일본 몬테로자의 '笑笑'(わらわら) 브랜드에 대한 보도가 매우 많았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혔다.

특허법원은 또 △에프앤디의 대표이사가 몬테로자의 '笑笑' 외에도 여타 일본 브랜드를 모방한 주점 브랜드를 다수 운용했다는 점 △한국 와라와라의 실내 분위기와 인테리어, 영업방식이 일본 몬테로자 브랜드와 비슷하다는 점 등을 지목하며 "에프앤디 측이 몬테로자의 영업상 신용이나 고객 흡인력에 편승해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부정한 목적으로 상표를 출원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은 △외국 상표가 국내에 등록돼 있지 않은 상태를 기회로 삼아 모방대상 상표의 신용에 편승해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고 하거나 △모방대상 상표의 가치에 손상을 주거나 △모방대상 상표를 보유한 이의 국내 영업을 방해하는 등 방법으로 상표권자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목적으로 사용한 때만 상표등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에프앤디 측의 상표등록을 무효로 하기 위해서는 △모방대상 상표가 국내외 수요자 사이에 특정인의 상표로 인식돼 있을 것 △부정한 목적이 있을 것 등 2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특정인의 상표로 인식돼 있는지를 보려면 상표의 사용기간과 방법, 이용범위 등과 함께 사회 통념상 객관적으로 상당한 정도로 해당 상표가 알려졌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또 부정한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모방대상 상표의 인지도나 창작의 정도, 모방대상 상표와의 동일성·유사성 정도, 문제가 된 상표의 출원인과 모방대상 상표권자 사이의 교섭 유무 및 교섭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몬테로자 측의 브랜드는 2007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데다 한국시장 진출을 도모한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에프앤디가 2007년 등록한 상표에 대해서도 "기존에 등록한 상표에 축적된 자신의 독자적 영업상 신용과 인지도에 기초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출원한 것으로 볼 수 있을 지언정 몬테로자의 국내시장 진입을 저지하거나 대리점 계약의 체결을 강제할 목적 또는 일본 '笑笑' 브랜드의 명성에 편승해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 등으로 출원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특허법원은 대법원에서 파기돼 다시 맡게 된 사건에서 에프앤디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에프앤디가 '와라와라' 브랜드로 영업을 계속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관련조항
상표법
제33조(상표등록의 요건)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상표를 제외하고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
1. 그 상품의 보통명칭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
2. 그 상품에 대하여 관용(慣用)하는 상표
3. 그 상품의 산지(産地)·품질·원재료·효능·용도·수량·형상·가격·생산방법·가공방법·사용방법 또는 시기를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
4.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나 그 약어(略語)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
5. 흔히 있는 성(姓) 또는 명칭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
6. 간단하고 흔히 있는 표장만으로 된 상표
7. 제1호부터 제6호까지에 해당하는 상표 외에 수요자가 누구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표시하는 것인가를 식별할 수 없는 상표
② 제1항제3호부터 제6호까지에 해당하는 상표라도 상표등록출원 전부터 그 상표를 사용한 결과 수요자 간에 특정인의 상품에 관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 경우에는 그 상표를 사용한 상품에 한정하여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
③ 제1항제3호(산지로 한정한다) 또는 제4호에 해당하는 표장이라도 그 표장이 특정 상품에 대한 지리적 표시인 경우에는 그 지리적 표시를 사용한 상품을 지정상품(제38조제1항에 따라 지정한 상품 및 제86조제1항에 따라 추가로 지정한 상품을 말한다. 이하 같다)으로 하여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등록을 받을 수 있다.

제34조(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는 상표)
① 제33조에도 불구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상표에 대해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
11. 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타인의 상품이나 영업과 혼동을 일으키게 하거나 그 식별력 또는 명성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는 상표
12. 상품의 품질을 오인하게 하거나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상표
13. 국내 또는 외국의 수요자들에게 특정인의 상품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 있는 상표(지리적 표시는 제외한다)와 동일·유사한 상표로서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그 특정인에게 손해를 입히려고 하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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